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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팟캐스트]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2편 “황신덕” 여성인권에 앞장섰지만 제자를 근로정신대 지원을 독려

2019년 5월 9일 1278

[바로듣기] ☞ (5.07)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2편 “황신덕” 여성인권에 앞장섰지만 제자를 근로정신대 지원을 독려 ☞ (4.30)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1편 “박인덕” 여성계몽운동가로 화려한 활동 그러나 황국식민의 여성으로 급격한 변신 ☞ (4.23)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0편 “문명기” 애국기 헌납운동을 일으킨 맹목적 친일파 ☞ (4.16)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9편 “이승우” 창씨개명을 적극적으로 앞장 서 추진한 변호사 ☞ (4.0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8편 “김우영” _내선융화의 상징, 조선인 부영사 되다 ☞ (4.0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7편 “최린” 독립선언의 주역, 변절의 아이콘이 되다 ☞ (3.26) ‘내역사’ 시즌 3: 강제동원 3편 “피해자 변호인단에게 판결과정과 향후 활동계획을 듣는다 ☞ (3.21)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6편 “박중양” 3.1운동 진압을 위해 자제단을 이끈 거물급 친일파 ☞ (3.1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5편 “김대우” – 황국신민서사를 제정 입안하여 황국신민화에 앞장선 인물 ☞ (3.0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2부 ☞ (3.05)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1부 ☞ (2.27)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2부 ☞ (2.2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1부 ☞ (2.1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4편 “심우섭” 한 시대 형제의 다른 삶, 기회주의자 지식인의 원형 ☞ (2.12)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_2편_한일청구권협정의

“일제에 빼앗긴 어버이날”…강제동원 희생자 추모 전시

2019년 5월 9일 1536

[앵커] 어버이날 부모님 가슴에 한 번도 꽃을 달아드리지 못한 이들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으로 부모님을 여읜 유족들입니다. 백발이 된 자식들은 한 데 모여 희생된 부모님을 추모했습니다. 송재인 기자입니다. [기자] 75살 동정남 씨는 한 번도 아버지를 본 적이 없습니다. 동 씨가 태어난 바로 그 해, 일본군에 강제 동원된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생을 마감했기 때문입니다. 동정남이란 이름 석 자만이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흔적입니다. [동정남 /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 : 아들 낳았다니까 사다오라고 일본말로요. (국어로) 정남이. 그렇게 이름을 아버지가 지어주셨답니다. 고생해서 찾았어요.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여섯 살이던 1944년, 아버지와 생이별한 최두용 씨. 전쟁터로 끌려가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최두용 /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 : 축음기를 사달라고 졸랐던 게 기억이 나. 떠날 때 내가 바짓가랑이를 잡고 못 가게 울고 발버둥 치니까 축음기 사다 준다 하시면서 떠나셨다고.] 일제 강점기 외국으로 강제동원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올해에는 어버이날을 기념해 희생자 유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이제 백발이 된 자식들은 사무치는 마음을 담아 아버지가 지났을 그 바다, 그 길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렸습니다. [정윤현 /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 : 언제 오시는 거여….] 전시회에는 유족들이 일본 정부의 사과와 보상을 받기 위해 싸워온 역사가 낱낱이 기록됐습니다. [김승은 / 민족문제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 학예실장

6년째 민간에서 국가폭력 유해발굴 “정부-국회 뭐하나”

2019년 5월 9일 1033

공동조사단, 9일부터 아산에서 제7차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충남 아산시와 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아래 공동조사단, 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이 오는 9일부터 한국전쟁기 제 7차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을 벌인다. 발굴지역은 아산시 염치읍 일대다. 지난 2014년, 정부와 국회에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을 촉구하기 위해 시민단체에서 시작한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이 6년째를 맞았다. 이번 염치읍 백암리(49-2) 유해발굴은 지난해 2월 아산시와 공동으로 진행한 배방읍 설화산 유해발굴 작업의 연장선이다. 1950년 전쟁 시기 탕정면에서 90여 명, 염치면 등에서도 수십 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지방자치단체 처음으로 아산시가 지방보조금 사업으로 유해발굴을 벌여 최소 208명의 민간인 희생자의 유해와 550여 점의 유품을 발굴했다. 충남 아산지역은 1950년 9월부터 1951년 1월에 걸쳐 인민군 점령시기의 부역혐의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민간인 800여 명 이상이 적법한 절차 없이 희생됐다. 공동조사단 관계자는 “국가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법적․정치적 책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조차 지지 않고 있다”며 “유해발굴에 나서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분들의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동조사단은 10일 오전 11시 염치읍 백암리 현장에서 유해발굴 개토제를 가진 뒤 오는 19일 까지 유해발굴을 할 예정이다. 제7차 유해발굴공동조사단 참여단체는 4.9통일평화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정의실천연대, 이내창기념사업회,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 인권재단사람, 장준하기념사업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평화디딤돌, 포럼진실과정의,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 등이다. <2019-05-08>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6년째 민간에서 국가폭력 유해발굴 “정부-국회 뭐하나”

친일화가가 그린 윤봉길 의사의 ‘영정사진’

2019년 5월 9일 3919

장우성 화백, 충의사에 있는 윤봉길 ‘표준 영정사진’ 그려… 지역사회 “올해는 반드시 교체” 매헌 윤봉길 의사 ‘영정’을 둘러싼 논란이 재현되고 있다. 이번에는 충의사 사당(충남 예산군 소재)에 모셔진 표준영정이 아니라, 평화축제 때 영정모시기에 사용하는 영정 때문이다. 주최 측이 기존 김종래 화백 작품이 노후했다며 새로 제작했지만, 유족들의 입에서는 “왜 바꿨는지 모르겠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뿐만 아니라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에는 일제강점기 친일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화가가 그린 윤 의사 표준영정도 교체하자는 여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적어도 윤 의사의 고향에서만큼은 친일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사)매헌윤봉길월진회는 4월 29일 윤봉길평화축제에서 새 영정으로 ‘영정모시기’를 진행했다. 주최측은 “축제 준비과정에서 기본 영정이 오래돼 교체얘기가 있었다”며 “윤 의사가 태극기 앞에서 수류탄을 들고 찍은 사진을 기본으로 색상과 선명도 등 디지털작업을 해 다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보는 이들은 내내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우중충하다”, “복장이 이상하다”,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한 유족은 “유족들도 먼저 게 낫다고 입을 모았다”며 어색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까지 윤봉길평화축제에서 모신 영정은 우리에게 ‘엄마 찾아 삼만리’와 ‘일지매’ 등으로 유명한 김종래(1927~2001) 화백의 작품이다. 충의사가 처음 지어질 당시인 1968년 그려져 사당에 모셔졌다가, 1971년 박정희 전 대통령 지시로 충의사를 다시 건립할 때 지금 있는 월전 장우성(1912~2005) 화백의 표준영정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장 화백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사로 분류한 이다. 그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항일

“日징집도 분한데 야스쿠니 합사라니”…유족들 소송

2019년 5월 8일 1223

일제 태평양 전쟁 강제징집 전사자 유족들“나중에 아버지 야스쿠니 합사된 것 알아”“강제징집 당한 것, 일왕에 충성한 것 아냐”‘야스쿠니신사서 이름 빼달라’ 일본서 소송“해결 못하고 아버지 만나게 될까 서글퍼” 오는 28일 도쿄지방법원서 1심 선고 예정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제국주의 침략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일본군에 강제동원됐다가 불귀의 객이 된 어버이의 이름을 되찾으려는 이들이 있다. 태평양 전쟁에 강제징집 됐다가 전사한 고 이낙호씨의 아들 명구(81)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7일 뉴시스와의 만남에서 “꿈에서라도 가족들 모습을 보고 싶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이씨는 경기 여주에서 소마차 끄는 일을 하다가 1944년 1월20일 일본군에 끌려가 전장에 내몰렸다고 한다. 이후 그는 남양군도 팔라우 섬에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아버지를 일본군에 데려가려고 여러 번 사람이 왔던 기억이 있어요. 그 날도 아버지를 데려가려는 사람들이 왔기에, 다른 마을에 계시던 할머니를 모시러 나갔어요. 아버지가 끌려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할머니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할머니를 집으로 모셔왔을 때 이미 아버지 모습은 보이지 않았죠.” 이씨가 일본군에 끌려간 이후 할머니는 오열했고, 명구씨는 끌려가는 아버지를 잡지 못했던 것이 원통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당시 이씨는 6살이었다. 이씨가 강제징집된 이후 가족들은 친척집에서 곁방살이를 해야 했다. 해방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씨 가족에게 전사 통지서가 날아왔다. 이씨가 강제징집된 이후 병이 생긴 명구씨 어머니는 통지서를

‘가슴 치는’ 어버이날..”부모님 유골도 못 모셔”

2019년 5월 8일 1043

[뉴스데스크] ◀ 앵커 ▶ 매년 돌아오는 어버이 날마다 부모를 잃은 고통이 더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일제에 의해서 강제로 전쟁터와 탄광에 끌려가 희생된, 피해자들의 가족들 인데요. 양효걸 기자가 만나고 왔습니다. ◀ 리포트 ▶ 7살때 아버지와 생이별한 지 올해로 75년. 이명구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일본군에 강제 징집돼 끌려나던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이명구 할아버지/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가족] “할머니가 그 때 땅을 치며 통곡을 하면서 내 아들을 일본놈들한테 빼앗겼다고…” 해방이 되면서 아버지가 곧 돌아올 줄 알고 손꼽아 기다렸지만 집에 도착한 건 전사통지서 한장. 그 이후 어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연이어 세상을 등졌고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남동생마저 먼저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동생이 ‘형, 사과 하나 먹게 해달라’고 (말했던 것이) 난 그게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서…” 1944년, 아버지가 탄광으로 끌려간 뒤 소식이 끊긴 박진부 할아버지는 아직도 부친의 유골조차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진부 할아버지/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가족] “아버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은 확실히 찾지 못했어요. 아직까지도. 지금 찾고 있는 중인데…” 지난해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렸지만, 일본 정부는 정당한 소집이었다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고노 다로/일본 외무상(지난해 11월)] “(이번 판결은) 한일 양국 간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어렵게 할 수 있는 사태입니다.” 지난 40여 년간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일본 정부에 제기한 소송은 모두 80여 건. 이 가운데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보도자료] 3·1운동 100주년 기획전Ⅱ “빼앗긴 어버이를 그리며”

2019년 5월 7일 1476

[다운로드] [보도자료 – 식민지역사박물관] 3·1운동 100주년 기획전Ⅱ빼앗긴 어버이를 그리며 어버이날을 맞아 강제동원피해자와 유족들의 통한을 담은 〈빼앗긴 어버이를 그리며〉 기획전을 개최합니다. 일제의 아시아태평양침략전쟁 때 일본과 중국, 동남아, 남양군도와 사할린 등 머나먼 이역으로 끌려가 희생당한 수많은 조선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장에서 탄광에서 또 공장과 공사장에서 굶주림 속에 강제노역과 학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많은 이들은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숨져갔으며, 돌아온 사람도 상흔을 안은 채 평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끌려간 어버이의 얼굴조차 사진으로만 기억해야 했던 갓난아기가 이제 흰머리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일본정부는 진정한 반성은커녕 과거사를 부정하고 이를 정치에 이용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나는 아직도 싸우고 있다!” 강제동원피해자와 유족들은 진실을 찾기 위해 기록과 유해를 찾아 헤매고,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을 상대로 지난한 소송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역사정의를 향한 투쟁에 함께해 주십시오. ■ 전시개요1. 전시명 : 3․1운동 100주년 기획전Ⅱ 빼앗긴 어버이를 그리며2. 장소 : 식민지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3. 기간 : 2019.5.8.(수)~7.28(일)4. 주최 : 내일을여는역사재단 식민지역사박물관5.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6. 후원 :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7. 주요내용 : 1부 빈 상여에 실어 보낸 한恨의 세월 | 2부 끌려간 사람들, 남겨진 이야기 | 3부 죽은 자의 명부, 돌아오지 못한 유골 | 4부 강제동원의 현장을 기억하라 | 5부 살아남은 자의 끝나지 않은 투쟁※ 개 막 식 : 2019.5.8.(수) 오후 14:00 | 1층 돌모루홀※ 식전행사 :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과의 오찬

“친일파 애국가 대신 ‘아리랑 애국가’ 불러야 할 때”

2019년 5월 4일 4222

[인터뷰] ‘아리랑 애국가’ 제시한 임진택 소리꾼 애국가를 바꾸자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온다. 작곡가 안익태(1906~1965)의 일제 강점기 친일 부역 전력이 드러나면서다. 나아가 안익태가 친 나치주의자였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최근 저서 (삼인 펴냄)를 통해 안익태가 유럽에 거주하던 때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친일파로 변절했고, 나치의 재정 지원을 받는 ‘독-일 협회’가 주최한 여러 공연에서 적극적으로 곡을 지휘한 전력을 소개했다. 이를 근거로 이 교수는 안익태가 베를린 주재 만주국 외교관으로 위장한 정보총책이었던 에하라 고이치의 특수공작원으로 의심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미 안익태가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을 찬양하는 을 작곡하여 연주한 전력도 알려진 바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부역 인물이 작곡한 곡을 국가(國歌)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게 애국가 논란의 본질이다. 안익태의 자체가 표절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정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최근 과 인터뷰에서 안익태의 가 불가리아 민요 를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점화한 후 일각에서 대안이 제시됐다. 일부 민주화 운동 진영은 민주 항쟁의 상징이 된 을 새로운 국가로 불러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했다. 일제에 무력으로 저항한 항일운동가들이 부르던 독립군가를 비롯한 항일음악을 국가로 채택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애국가를 바꾸자는 여론이 나온 배경이다.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은 그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아직은 애국가 변경 여론이 거세지 않은데다, 이념 논쟁이 틀림없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안익태 친일 논란이 커지자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 등은 안익태의 친일 전력을 ‘작은

제주 학교현장 일제 잔재 지우기 추진한다

2019년 5월 2일 1209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제주도내 학교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를 지우기 위한 노력이 본격 추진된다. 2일 제주도교육청에 따르면 1945년 이전에 개교한 도내 학교는 초등학교 45개교, 중학교 2개교, 고등학교 3개교 등 총 50개교다. 이들 학교에 일본인 교장은 총 19개교에 84명이 있었다. 이들 학교 중 교명에 ‘제일’, ‘중앙’ 또는 ‘동서남북’ 방위가 들어간 학교는 제주북초, 구좌중앙초, 제주동초, 제주제일중 등 4개교다. 이밖에도 1945년 후에 세워진 학교 가운데 이처럼 제일·중앙 또는 동·서·남·북 방위명이 들어간 학교가 여럿 있다. 또한 일본향나무를 교목으로 지정한 학교는 초등학교 12개교, 중학교 5개교, 고등학교 4개교 등 21개교다. 또한 학교 내에 보유하고 있는 일본향나무는 초등학교 1천318그루, 중학교 300그루, 고등학교 535그루, 특수학교 4그루 등 총 2천157그루다. 일본인 작곡가가 만든 교가를 쓰는 학교는 없었다. 도교육청은 이처럼 학교현장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를 없애기 위해 ‘미래 100년 학교문화 바로 세우기’ 계획을 수립했다. 도교육청은 홈페이지에 ‘학교 속 일제잔재 청산 참여마당’ 코너를 설치해 학생, 교사, 학부모, 시민 의견을 수렴한다. 도의회, 학계, 시민단체, 유관기관, 교육단체 관계자와 교육계 원로 등으로 교육현장 친일잔재 조사 및 청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운영한다. 또한 각 학교별 교내 유·무형의 일제 잔재를 조사해 교육공동체 의견 수렴과 협의를 통해 청산 및 교육적 활용 방안을 마련하도록 한다. 제주도의회에서는 식민잔재 청산의 근거가 될 조례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제주도의회 의원연구모임인 제주교육발전연구회(대표 김창식 교육의원)는

춘천문학공원 친일 행적 문인 3명 시비(詩碑) 철거한다

2019년 5월 2일 1450

서정주·최남선·조연현 등 표지석과 함께 땅에 묻기로 강원 춘천시 서면 의암호변에 자리잡고 있는 춘천문학공원(사진) 내에 있는 서정주, 최남선, 조연현 등 친일 행적 문인 3명의 시비(詩碑)가 사라진다. 춘천시는 3일 일제강점기에 창씨 개명한 이름으로 친일 관련 글을 다수 발표한 서정주와 조연현(함안 출생)의 시비를 철거하기로 했다고 1일 밝혔다. 또 1935년부터 일본 신도 보급에 참여하고, 1936년 6월부터 1938년 3월까지 3년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최남선의 시비도 철거할 계획이다. 춘천시는 친일 행적 문인들의 시비 3개를 별도로 제작한 표지석과 함께 땅에 묻기로 했다. 표지석에는 ‘이곳, 춘천문학공원에 불손하게 들어앉은 일제강점기 친일 문인들의 흔적을 이곳에 묻는다. 슬픈 역사도 버릴 수 없는 우리의 것이나 민족의 아픔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까닭이다’라는 문구를 새길 예정이다. 춘천시는 나중에 후손들이 춘천문학공원 일대를 재정비하거나 발굴할 때 친일 행적 문인들의 시비가 왜 땅속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도록 표지석을 제작해 함께 묻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춘천문인협회는 최근 춘천시에 공문을 보내 친일 인명사전에 등록된 작가들의 시비를 철거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이재경 춘천시 문화예술계장은 “친일 행적 문인들의 시비를 철거해 달라는 민원이 들어와 논의를 거친 끝에 철거하기로 했다”며 “일단 철거작업을 마친 후 춘천문학공원 내 잡풀을 제거하고, 단계적으로 노후한 다른 문인들의 시비도 정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춘천문학공원엔 춘천을 대표하는 작가 김유정 선생의 문학비를 비롯해 문인 80여명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