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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이날’] 4월30일 ´고향의 봄´을 친일파가 만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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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이날’]은 195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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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월24일 경남 창원시 고향의봄도서관에서 이원수 탄생 100주년이자 타계 30주기 기념사업 선포식 및 흉상제막식이 열렸다. 창원시 제공

■2008년 4월30일 ‘고향의 봄’ 이원수·홍난파는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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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지난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2018 남북정상회담 만찬에서 제주소년 오연준군(12)이 ‘고향의 봄’을 불렀습니다. ‘고향의 봄’은 우리 민족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 한국인의 정서가 깊이 배어있는 노래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김정숙 여사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리설주 여사는 흐뭇한 미소를 띤 채로 오군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김 여사는 ‘고향의 봄’을 따라부르기도 했습니다. 오군의 맑은 목소리로 울려퍼지는 ‘고향의 봄’은 한반도에 봄이 왔음을 체감케하는 따뜻한 봄바람 같았습니다.

그런데 10년 전 이날, 경향신문은 곧 출간 예정이었던 <친일인명사전>에 ‘고향의 봄’의 작사가 이원수가 포함됐다고 전했습니다. 전날 <친일인명사전>의 출간을 맡은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회는 수록자 명단 4776명을 공개했습니다. 명단에는 작곡가 안익태, 무용가 최승희, ‘고향의 봄’ 이원수 등 저명한 문화 예술가 인사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원수는 1942년 조선금융조합 기관지 ‘반도의 빛’에 발표한 시 ‘지원병을 보내며’ 등 친일 색채가 농후한 작품을 남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아동문학가 동원 이원수가 ‘고향의 봄’을 쓴 것은 보통학교 학생이던 열다섯살 때였습니다.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창원에서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을 담아 동시 ‘고향의 봄’을 썼는데요. 이 동시는 1926년 방정환이 출간한 잡지 <어린이>에 소개되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후 음악가 홍난파가 동시 ‘고향의 봄’에 곡을 붙여 ‘국민 동요’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홍난파 역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친일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의원 등으로 활동한 전력이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고향의 봄’을 만든 두 사람이 친일명단에 오르면서 이후 이들을 둘러싼 기념비·기념 사업 역시 진통을 겪었습니다.

2011년에는 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을 도시 대표 문화 행사로 만드려는 창원시와 그의 친일행적을 문제 삼는 시민사회단체가 갈등을 빚었습니다. 당시 창원시는 ‘고향의 봄 공원’을 조성하고 이원수의 탄생 100주년 기념식, 흉상 제막식, 이원수문학상 제정 등에 예산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이에 10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창원시가 친일 문인 한 사람을 끌어들여 시의 가치를 보태야 할 정도로 초라하고 구차한 도시인가”라고 반문하면서 “그는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을 일제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모는 일에 열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이원수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는 “기염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친일작품을 남긴 문제로 발생해 창원시민들의 반목이 일어나고 있다”며 “시 예산을 반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사업회는 “이 선생이 친일행위에 대해 참회하지 못한 일을 기념사업회가 대신해 사과하는 뜻으로 이 선생의 공과에 대한 백서를 만들겠다”고도 밝혔습니다.

2015년에는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앞 ‘광복의 동산’에 세워진 홍난파 기념비 앞에 그의 친일행적을 알리는 ‘단죄문’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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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원수와 홍난파의 친일행적이 수록된 이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기까지는 많은 좌초 위기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날 경향신문은 <친일인명사전>을 펴낼 수 있게 된 것은 네티즌들의 대대적인 기부운동 덕분이라고 전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은 1999년 8월 전국 대학교수들의 1만명 서명운동으로 그 편찬의 싹을 틔우기 시작했습니다. 1991년 설립된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운동에 힘입어 2001년 12월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를 발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실제 편찬에 이르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2003년 12월 16대 국회 예결위에서 이 책의 기초자료 조사에 책정된 에산 5억원을 전액 삭감시킨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국회의 예산 삭감이 전화위복이 됐습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기부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진 것입니다.

네티즌들은 “바위에 구멍을 뚫는 물방울의 심정으로 참여해보자”며 작은 정성들을 모았고 성금 모금 11일 만에 3만여명의 네티즌들이 7억5000여만원의 성금을 내놓았습니다.

결국 <친일인명사전>은 2009년 11월8일 출간됐습니다. 1945년 8월15일 해방까지 일제식민통치와 전쟁에 협력한 4389명의 주요 친일 행각과 광복 이후의 행적 등을 담은 이 책은 총 3권, 3000여 쪽에 달했습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경향신문<2018-04-30>

☞기사원문: [오래전 ‘이날’] 4월30일 ´고향의 봄´을 친일파가 만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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