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일본 히로시마에서 청각 장애인 분들을 대신하여 자료를 기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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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무라 메구미 회원 / 수화 통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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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신사와 ‘황군’의 사진, 도고신사 엽서와 종군화가가 그린 엽서, 점령지 한글 가쇄 우표와 편지, 칙유집(勅諭集), 성칙초(聖勅抄), ‘천황’ 사진

저는 일본 히로시마에서 수화 통역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 수화는 현대 수화에 비해 시대적으로 낡은 수화입니다. 연세가 많으신 청각 장애인 분들과의 관계 속에서 가족 분들과도 교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청각 장애인 분들 집에서 청소(물품 정리)를 도와주기도 합니다. 그냥 청소를 하거나 창고에서 살림 도구를 다루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편지나 서적 등을 정리해드립니다. 제 취미가 독서인 것을 아시고 옛날 서적을 물려주시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저는 작년에 한일협정 50년을 맞이하여 한일 시민이 공동으로 추진한 ‘한일관계 재설정 캠페인’에 이어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관계로 장애인 분들 집에서 청소할 때 “식민지 역사에 관한 물품이 없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식민지 역사와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지만”이라고 하시면서 저에게 자료를 맡기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야스쿠니 신사와 황군의 사진’을 소장하셨던 분과 저는 그 분이 돌아가시기 전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청각 장애인으로 일본어를 할 줄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학교에서 가장 발음이 좋다고 칭찬 받았다”면서 “귀가 안 들려서 전쟁터에 나갈 수 없는 비국민이라는 말을 듣고 억울해서 지원했어. 전쟁 중에 총알받이로 이용당하고 중국에서 포로가 되어 군사재판을 받았지만 재판에서는 (일본어의) 수화 통역이 있어서 놀랐어. 귀가 안 들려서 좋을 대로 이용당했을 것이라는 법원의 판단으로 유죄 판결을 받지 않고 돌아올 수 있었어. 그런데 무사히 돌아왔는데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으로 가족(어머니와 누나)을 잃었어. 두 번 다시는 전쟁을 해서는 안 돼.”라고 늘 이야기하셨습니다.
이 분이 돌아가신 후에 물려받은 유품이 이 자료들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어도 사람들에게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어딘가에 기증할 것을 유족 분들에게 제안해봤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도 기뻐하실 겁니다. 다만 익명으로 부탁드립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유족 분들이 원하시는 대로 익명으로 기증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외의 자료들도 그 분 소개로 받은 것입니다. ‘자료를 이대로 방치하면 아무도 볼 수 없다.’라고 늘 이야기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를 만나 같이 청소하면서 자료를 기증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모든 가족 분들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익명으로 기증하는 이유는 ‘낡은 자료라 우리는 돈이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지만 부끄럽게도 가족들 중에는 자료를 팔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서 조심하기 위해’라고 합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세워지면 꼭 방문하고 싶다.”라고도 하셨습니다. 지난 10월 8일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오사카 집회가 끝난 후 이 자료들을 김승은 자료실장님께 전달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히로시마로 돌아오고 기증 보고를 한 후 또 다른 분께서 “자료가 더 있을지도 모르니까 집에서 찾아볼게요.”라고 하시면서 ‘1933년 7월 5일 발행 최신 대일본지도’를 주셨습니다. 그 후 자료를 몇 개 더 받았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셨던 것도 포함되어 있어서 낙서나 스카치테이프가 붙어 있던 흔적들이 남아 있지만 그대로 익명으로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제대로 된 자료가 아니라서 미안하다고 하시는 가족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기증 자료를 통해 전쟁이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는 침략전쟁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이러한 자료가 시민들에게 공개되고 함께 ‘평화’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분들을 대신해 자료를 기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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