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일제의 선택 받은 경성방직, 제국의 후예냐 대군의 척후냐

1111

▲ 에커트 교수 ‘제국의 후예’… “일제가 동맹군 얻기 위해 육성”


▲ 주익종 연구사 ‘대군의 척후’… “자본주의 체제 뛰어난 적응력”


‘경성방직은 제국의 후예냐 대군의 척후냐.’


카터 J 에커트 하버드대 교수가 쓴 <제국의 후예> 한국어판이 2008년 출간됐을 때 이 책을 반박하는 <대군의 척후>도 함께 세상에 나왔다. 대군의 척후는 춘원 이광수가 1935년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따온 말이다. 해방 이후 삼성·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군(大軍)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김성수·연수 형제와 같은 근대 초기 자본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뜻을 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대군의 척후> 저자인 주익종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제국의 후예> 번역도 맡았다는 점이다. 주 연구사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펼쳐온 낙성대경제연구소 안병직·이영훈 교수의 제자다.


 


에커트 교수와 주 연구사 모두 광의의 식민지 근대화론자로 볼 수 있다. 조선 전통경제 변화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성방직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견해가 엇갈린다. 주 연구사는 “중소기업으로 시작한 경성방직이 일본의 대기업과 견줄 만한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한국 기업의 성장과 단련의 과정”이라고 밝혔다. 이 훈련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삼성전자, 현대차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에커트 교수는 일제가 동맹군을 얻기 위해 한국인 기업 육성책을 썼다고 하지만 실증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라며 “김성수·연수 형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뛰어난 적응력을 보이며 기업가 정신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경성방직을 예속자본이나 친일파라고 간단히 폄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성수·연수 형제의 탁월한 기업가 정신에 대해서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극단적인 관치주의를 택하고 있는 식민지 권력이 금융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업가들로선 총독부와 밀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총독부로서는 ‘조선인도 권력에 협조하면 이렇게 성장할 수 있다’는 본보기가 필요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기업가 역량을 강조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설명했다. 에커트 교수 분석에 대해서도 편향성을 지적했다. 극단적인 관치주의라는 체제 문제는 강조하지 않고 일제와 협력해 성장한 경로만 강조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1919년 3·1 운동으로 일제는 협조적 세력을 양성하는 문화통치로 통치 방식을 변경했다”며 “경성방직은 일제의 선택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2015-01-26> 경향신문


☞기사원문: [광복 70주년 기획 – 우리는 과연 해방됐는가]일제의 선택 받은 경성방직, 제국의 후예냐 대군의 척후냐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