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2011년2월15일『내일신문』21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친일청산 갈림길에 선 사법부]③ ‘이해승 사건 판결’을 뒤집어 본다
| 2011-02-15 오후 1:06:15 게재 |
“한일합방 공로없는 귀족임명은 없었다” 역사학계, 조선귀족령 문구에만 매달린 재판부 비판 천황조서 조약문 통감 유고 등 ‘합방공로 작위’ 근거 수두룩 “이해승 사건 판결 때문에 친일재산 환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상황이다.”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해 해방 후 60년만에 친일잔재청산을 이끌었던 민족문제연구소의 조세열 사무총장은 사법부의 움직임에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연말 대법원은 이해승 사건에 대해 ‘친일파는 맞지만 재산환수 대상자는 아니다’라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확정ㅈ;었다. 시가 322억원 상당의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부지 등이 이해승의 후손 에게 돌아가게 됐다. 오는 3월이면 국가가 이해승의 후손을 상대로 제기한 228억원의 부당이득환수 소송이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전광식 부장판사)에서 속행된다. 관련 역사학계와 광복회 등은 “재판부가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법조항의 문구에 매달려 판결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후속 재판에서 바로잡히기를 희망하고 있다. ◆ 근거 법엔 ‘훈공 있는 자’ 규정, 재판부 귀족령에만 매달려 = 이해승 판결은 일제시대에 조선귀족 작위가 ‘한일합방의 공로’만으로 수여됐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도 수여됐는지가 핵심쟁점이다. 사법부는 “이해승이 일본황실로부터 작위를 받았으나, 한일합방의 공로가 아니라 조선왕실의 자격으로 받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해승이 후작의 작위를 받은 1910년 10월 7일 이전에 한일합방의 공로로 확인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친일재산환수법이 재산환수대상자로 정한 “한일합방의 공로로 작위를 받은 자”에 이해승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조선귀족령 2조에 “작위는 이왕의 현재 혈족으로서 황족의 예우를 받지 않는 자와 문지(門地) 또는 공로가 있는 조선인에게 수여한다”는 규정에 따라, 한일합방의 공로가 확인되지 않은 이해승은 왕실의 자격으로만 작위를 받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역사학계는 “일본은 한일합방의 공로자에게만 작위를 수여했으며 귀족령은 한일합방의 공로를 세운 사람을 신분에 따라 세부류로 나눠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재판부는 작위수여자가 서로 다른 세부류로 구분된다는 것이고, 역사학계는 이 세부류가 모두 ‘한일합방의 공로’를 전제로 하여 신분을 나눠놓은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조선귀족령은 ‘한국병합조약’에 근거해 제정됐다. 한국병합조약 5조는 “일본국 황제폐하는 훈공있는 한인으로서 특히 표창에 적당하다고 인정된 자에 대하여 영작을 수여하고 또 은금을 줄 것이다”고 돼 있다. 조선귀족령의 전문은 “짐(일본천황)이 생각컨대 이가(李家)의 의친 및 그 방가의 대로(大勞)가 있는 자는 마땅히 … 조선귀족으로 삼아 …이에 그 구덕(舊德)과 전공(前功)을 전하여 조선귀족령이라 하고 이를 재가하여 공포케 한다”고 되어 있다. 조선귀족령의 법조문에 나열된 세부류가 모두 ‘합방의 공로’를 전제로 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당시 일본의 메이지유신 헌법은 “모든 주권은 천황에게 있다”고 못박고 있다. 천황의 조서나 방침이 모든 법에 우선했다. 또 황실령인 ‘조선귀족령’은 일본황실의 전범인 반면 한국병합조약은 법률로서 지위를 갖는다. 병합조약과 천황의 방침이 모두 ‘합방의 공로’를 작위수여의 근거로 삼는데 비해 재판부는 이들에 근거해 만들어진 귀족령의 조항만을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조약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귀족령”임을 인정하면서도 귀족령에 세부류로 나눠졌다는 점만을 중시하여 이 세부류가 조약의 ‘훈공있는 조선인’을 분류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와 관련해 2월14일 새로운 사료를 발굴했다. 경성신보 1910년 10월 12일자에 “이해승이 양주의 선산에 가서 작위봉고(奉告)식을 거행했다”는 내용이다. 이용창 박사는 “이해승이 합방을 적극 찬동하고 천황의 작위를 받은 점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면 선조의 묘에 가서 봉고식을 할 이유가 없다”며 합방 적극 찬동행위의 근거로 제시했다. ◆ 한국병합장, 이름 자체로 합병공로 인정 = 재판부는 이해승이 한국병합장을 받은 사실도 ‘한일병합의 공로’를 인정하는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병합이 이뤄진지 2년 뒤인 1912년 3월 일제는 한국병합에 공로가 있는 자들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2년이 지난 뒤에 주어진 것인 만큼 1910년 8월 29일부터 작위수여일인 1910년 10월 7일 사이에 공로가 있었던 증거로는 볼 수 없고, 작위수여 후의 공로로 수여했을 수 있다”고 보았다. 역사학계는 “이름 자체가 한국병합장이므로 한일병합의 공로로 수여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특히 훈장은 일반적으로 큰 사건이 마무리된 후 그 사건의 공로를 따져 수여한다는 점에서 재판부가 2년의 시간에 의미를 두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해승은 작위를 수여받은 직후 조선귀족 76명을 대표하여 일본천황에게 감사인사를 가기도 했다. ◆ “재판부 인용 대법판례 따르면 친일재산환수는 연좌제”= 숱한 역사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작위수여 전 친일행적의 기록 부재’를 이유로 재산환수 불가판결을 내린 것은 친일재산 환수법을 연좌제로 해석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재판부는 “재산을 환수하는 것과 같은 침익적 행정처분 법규는 엄격하게 해석·적용하여야 하고, 그 입법 취지와 목적 등을 고려한 목적론적 해석이 전적으로 배제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 해석이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나서는 안될 것”이라는 대법원의 2008년 판례에 입각하고 있다. 재산을 빼앗는 것과 같은 조치는 법조문의 문맥에 딱 들어맞는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이해승의 재산을 대한민국 헌법이 보호하는 ‘후손들의 재산’이라는 전제에 서 있다. 이는 친일파 후손들이 “친일재산환수법은 선조의 죄를 후손에게 묻는 연좌제에 해당한다”며 헌법소원을 낸 것과 맥락이 통한다. 국가는 이에 대해 “이 재산은 친일한 선조의 것이며 해방 후 반민법이 제대로 시행됐더라면 애초에 후손들에게 돌아 갈 수 없었던 재산”이라며 연좌제가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법무부의 국가송무팀 관계자는 “이 판례를 인용하면 친일재산환수법은 연좌제법이라는 시각을 깔고 있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친일파의 재산을 보호해야 할 헌법상의 재산권으로 보는 시각 때문에 재판부는 재산환수법의 입법취지도 제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2005년 당시 친일재산환수법을 제정한 국회는 입법취지로서 작위수여자, 중추원 의장 참의 등은 그 직위를 받은 것만으로도 재산환수 대상자라는 점을 적시하고 있다. 당시 법안제안설명서에는 “법안의 내용을 문언대로 해석할 경우, 일제로부터 훈작을 받거나 대신 등 고위공직자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곧바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하고 있으나, 이 경우 당사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훈작을 받은 경우까지 무조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구체적 타당성을 꾀하기 위하여 이들 중 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환수대상자로 결정된 자만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보다 좁게 규정할 필요가 있고…”라고 되어 있다. 작위 수여만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며, 다만 아주 예외적인 경우의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위원회에서 환수대상자로 결정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한 것이다. ◆입법취지 “작위수여자는 당연히 친일파” = 작위를 수여받은 자는 반민족 행위자로서 재산환수대상에 포함되는 ‘당연범’이라는 점은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가 “중추원 참의는 직위 자체만으로 친일파”라고 결정한 점과도 통한다. 일제의 조선인 통치체제에서 조선귀족의 신분은 중추원보다 상위이다. ‘작위수여자는 그 자체로 친일재산 환수대상자’라는 헌재의 결정을 받아본다면 이해승 건은 쉽게 풀릴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헌법재판소에는 이같은 성격의 헌법소원은 청구되지 않았다.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역사학계는 서울고법에서 이해승 판결이 내려지자 재판부의 역사 이해를 돕기 위해 장문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심리불속행’으로 기각처리해 버렸다. 김명구 대구대 교수는 “친일재산환수법의 효력을 좌우할 중대한 사안에 대해 원심과 항소심이 다른 판결을 내렸는데도 대법원이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한 것은 책임을 회피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진병기 기자 jin@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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