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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시한 D-14, 우토로 마을은 지금…-연합뉴스(0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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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시한 D-14, 우토로 마을은 지금… 
 
   
 
오래된 집들이 빼곡히 들어선 우토로 마을. 일제시대 때 교토비행장을 건설하는데 강제 동원되었던 한인 1세대와 그 후손들이 모여 사는 마을입니다. 고향으로 여기며 60여 년을 살아온 이 마을이 강제철거 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마을 곳곳에 나붙은 강제철거를 반대하는 글귀로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달 말까지 일본인 땅 주인에게 지불해야 할 돈은 57억원 정도. 이미 2번이나 철거 시한을 연장한터라 이달 말을 넘길 경우 앞날을 예측하기 힘듭니다. 62년 전 강제로 끌려 올 때도 그랬듯 이번에는 다시 강제로 끌려 나갈 기구한 운명에 처했습니다.


인터뷰) 문광자 / 87세, 강제 동원 한인1세


여기 우리가 오고 싶어 온 것도 아니라요. 여기 그전에 전쟁 칠 때 (일본군)비행기 장소 닦는다고 여기(강제로 끌려)왔어요.

우토로 마을의 아픈 역사는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41년 일본이 우토로 51번지에 군 비행장 건설을 목적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을 강제 동원하면서 이 마을이 생겨났습니다. 그 이후 군수업체에서 닛산차체로 그리고 서일본 부동산 회사, 세 차례나 땅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그로부터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처절한 몸부림을 20년이나 이어왔습니다. 그 몸부림이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인터뷰) 황순례 / 75세, 강제 동원 한인1세


일본 정부가 우리 한국 사람들을 데려다 일을 시켜놓고는 그만 걸레처럼 내버리고 이제 와서는 자기들 마음대로 땅을 팔아버리고 사람 살고 있는데… 집하고 사람하고 같이 팔아버리고 그래서 이렇게 고생하고…

일본 내에 있지만 개발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마을 전체가 과거에서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합니다. 상하수도나 전기 같은 기본적인 생활 시설조차 지원받지 못해 대부분의 주민들은 여전히 우물물을 마시는 실정입니다. 지금도 차별과 빈곤, 무관심이 계속되는 곳입니다. 일본사회의 무관심과 차별에 맞서 당당히 싸우며 살아 온 우토로 사람들. 현재 65세대 2백명이 살고 있으며 그 중 80%는 대한민국 국적입니다.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온 이들의 소원은 평생을 보낸 이곳에서 그냥 살다가 죽는 것 입니다.


인터뷰) 김순애 / 88세, 강제 동원 한인1세


다른데 옮기려고 해도 나이 먹은 사람 그렇게 안 되고, (우토로 마을)들어와서 여기서 살다가 이 자리에서 죽는 게 낫지 싶습니다.


인터뷰) 김군자 / 79세, 강제 동원 한인1세


우토로는 내가 살아온 고향입니다. 우토로를 지켜주시오. 부탁하겠습니다.

지난 7월 우토로 주민대표들은 한국을 찾았습니다. ‘우토로를 생각하는 의원모임’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광철 의원 사무실을 찾아 주민들의 간절한 마음을 전달했습니다. 또한 기자회견을 열어 우토로에서 끝까지 살고 싶다고 한국 정부에 지원을 호소했습니다.


현장음) 김소도 / 우토로 마을 주민대표


마지막으로, 기로에 선 저희들에게 마지막 힘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국회 의원회관도 방문했습니다. 간절한 희망이 담긴 편지와 장미꽃을 299개의 우편함에 일일이 넣으며 마지막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습니다. 이제 우토로 마을의 또 다른 운명이 채 보름도 남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정진경 / 지구촌동포연대 간사


이 협상시한을 언제까지 끌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마 이번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고요. 이 협상시한을 넘기면 이제 우토로 주민들은 토지 소유권 협상 대상에서 밀려나는거죠.

협상 시한이 다시 연장이 되든 강제 철거를 집행 하든, 우토로 마을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하나는 우토로에서 끝까지 살고 싶다는 것. 이 간절한 목소리에 대한민국이 진정한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연합뉴스 김건태입니다.


<자료제공: 우토로국제대책회의, 사진작가 임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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