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독립영화에 관심이 많지 않은 대학생이 독립영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란흔치 않다. 극장에서 관객으로 만나기도 어렵거니와 어쩌다 과제로 부여받은 경우에도 영화를 찾아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독립영화를 알리는 적절한 홍보와 배급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2년이 넘는 장기 상영회를 거쳐(상영회는 현재도 진행 중) 지난 5월 DVD로도 출시된 독립영화가 있다. 바로 야스쿠니 합사문제를 다룬 한일 합작 다큐멘터리 ‘안녕 사요나라(2005)’다.
‘안녕 사요나라’의 김태일 감독. 인터뷰 전 그가 ‘기사는 절대 사절’이라는 뜻을 전해 왔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다큐멘터리 감독은 으레 자신만의 세계가 공고해 다가가기 어려울 것이란 선입견에 가득 차 있던 터였다. 하지만 그를 만나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느꼈던 감독의 평화롭고, 희망적이고, 따뜻한 시선이 틀린 게 아니었음을. “별다른 저만의 고집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어디 자랑하고 소개할 만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 편이죠.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요.”
그러나 15년 넘게 독립영화계에서 경력을 쌓은 김 감독은 ‘안녕 사요나라’를 통해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운파펀드 상, 2005년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등을 수상하고 국제 인디 영화제에도 자주 초청받는 내공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이번 영화도 이렇게 주목을 받게 될 줄은 몰랐어요. 꾸준히작업을 해왔을 뿐인데….” 말투에서 겸손함이 묻어나오는 그는 수상이나 흥행에 큰 관심이 없다고 했다.
영화를 본 한 명의 관객이라도 내용에 깊게 끌려 그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준다면 기쁘고 고마운 일이라고 했다. 영화가 상영될 수 있는 공간만 있다면 행복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와 잘 맞지 않잖아요. 말초적인 것을 자극하기보다는 ‘너 잘못 살고 있어, 이렇게 해야 돼,이런 걸 알아야 돼’라고 이야기 하니까요.”
다큐멘터리를 ‘사람들의 머리를 자꾸 치는 귀찮은 녀석’이라고 애정 섞인 비유로 표현하는 김 감독은 처음부터 영화 학도를 꿈꿨던 건 아니었다. “학창시절은 물론이고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쪽 일은 생각도 못했어요.” 그는 누구에게나 꿈과 적성이 따로 있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어릴 적부터 꿈꿨던 건축에는 대학에 와서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고, 문학이 적성에 맞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진로를 결정해야 할 시기가 와서, 직업분류표를 구해다 쫙 펼쳐놓고 수많은 직업을 하나하나 엑스와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체크했지요. 그렇게 고른 것이 독립영화 감독이라는 직업입니다.” 다행히 심사숙고해 선택한 이 직업이 자신과 잘 맞아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독립영화집단 ‘푸른영상’에서 활동하며 한국 현대사의 진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만들어 왔다. “다큐멘터리가 돈이 되는 장르가 아니다 보니 틈틈이 촬영이나 편집 일을 도와주며 제작비를 충당해야 했어요.” 제작환경이 어렵다 보니 독립영화 감독 중에는 영화라는 직업 이외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다수 있다고 한다.
김 감독도 예외는 아니어서 영화 제작 중간에도 제작비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작업을 몇 달씩 보류하곤 했다. 제작비 걱정 없이 1년을 꼬박 작품에 몰두할 수 있게 된 것은 최근작인 ‘안녕 사요나라’부터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작비전액을 지원 받았고,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독립영화 배급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일반 극장에서 상영되는 운도 따랐다.
“모든 매체, 세상의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아는 만큼 나오는 것이 다큐멘터리에요.” 김 감독은 어떤 사건도, 어떤 문제도 수박 겉핥기식으로는 만들어질 수없다고 말한다.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논문 한 편을 쓴다 생각하고 정보량을키워요. 상업 영화와 같이 전문 스태프가 따로 없기 때문에 혼자 부담하는 독서량과 자료 조사량이 방대합니다.”
남북문제를 깊게 조사하다 보니(분단을 넘어선 사람들, 1995) 한국 현대사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겼고, 현대사의 근원을 찾다 보니(22일 간의 고백, 1998) 식민지 역사에 관심이 갔으며,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파고 나니(나도 노동자이고 싶다, 2003) 동시대 주변국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그는 이렇듯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사실들이 몸으로 마음으로 와 닿기 시작하는 체화의 과정이 작업을해나가는 힘이라고 한다. “대학 때도 안 읽던 책을 너무나도 기쁘게 섭렵해요.알고는 있지만 정리가 되지 않던 것들이 책에 잘 정리되어 있으니 보물의 발견이죠.”
그는 상업 영화의 장점도 잘 알고 있지만, 큰 영화에 따르는 제재를 생각하면 평생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매체에 구속되어 살다 보면 내가 어느 길로 가는지 잘 모르게 돼요.
반면 다큐멘터리는 계속 내게 질문을 던집니다. ‘넌 똑바로 살고 있느냐?’라고요.” 다큐멘터리는 정해진 각본대로만 찍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한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속마음에 많이 놀라고 많이 배워요. 꼭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음 작품은 세계로 눈을 넓혀 제3세계 국가를 다룰 것이라는 김 감독은 은퇴할 즈음에 ‘세상은 이렇구나’라고 알게 되지 않겠느냐며 즐거운 웃음을 짓는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려면>
정석은 없고 영화사의 연출부에 들어가 경험 쌓기, 영화아카데미 수료, 영화학과 졸업 등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길은 여러 가지다. 그러나 상업영화 군에 비해 독립영화 군에는 영화와 동떨어진 일을 하다가 방향을 바꾼 사람도 많은 편이라고 한다.
현재 활동 중인 독립영화 군은 ‘보임’, ‘푸른영상’, ‘청년’ 등 10여 개의 단체가 있다. 동인제 형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사람을 모집하는 공채 형식은 따로 없고, 필름작업 성과물을 가진 사람이나 제작 노하우를 알고 있는 사람, 제작 일정 참여도가 인정되는 사람들 위주로 수시 모집한다. 영상 제작 경험을 쌓다가 단편 영화제에 입상하는 길도 있다.<헤럴드경제, 07.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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