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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헤이그를 기억하는 행사들(끝)-연합뉴스(07.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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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특사 100주년> ③헤이그를 기억하는 행사들(끝)  
  
 



                             고종이 이준에게 건넨 신임장


헤이그 현지 추모행사.학술대회 새 논문 봇물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1907년 6월25일 정사 이상설, 부사 이준ㆍ이위종 3인의 특사가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리고 있는 네덜란드에 도착했다.

회의가 시작된 지 이미 열흘이 지난 뒤였지만 3인의 특사는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준은 일본의 방해로 평화회의 참석의 뜻을 이루지 못한 울분을 참지 못해 현지에서 분사(憤死)했고 러시아 주재 공사의 아들로 영어ㆍ프랑스어ㆍ러시아어를 익힌 이위종은 헤이그에 모인 각국 언론을 상대로 적극적인 언론활동을 펼쳤다.

본국에서 열린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이상설은 귀국을 포기하고 전 세계를 상대로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다 러시아 관헌에 체포, 본국으로 압송됐다.

100년이 흐른 오늘 낯선 땅에서 쓰러져 가는 조국을 지키려 피와 땀을 쏟은 특사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추모행사가 잇따르고 있다.

◇국ㆍ내외 헤이그 특사 100주년 기념행사= 6월27일 백범기념관에서는 광복회 주최로 ‘헤이그 특사 100주년’ 기념식이 개최됐다. 김정복 국가보훈처장과 김국주 광복회장, 광복회원 및 유족 300여 명이 참석했다.

김 보훈처장은 기념사에서 “머나먼 이국에서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싸우신 헤이그 특사의 숭고한 정신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며 3인의 넋을 위로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날 헤이그 특사의 이미지 위에 고종황제의 신임장을 덧입힌 ‘헤이그특사 100주년 기념 우표’ 160만 장을 발행했다.

이준 열사의 순국일인 14일 이준 열사 묘역에서는 이 열사의 순국 100주년 추모제전이 열리며 이 열사의 정신을 되새기는 문화예술제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개최된다.

헤이그 현지에서는 이 열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6-14일 ‘유럽 한민족 평화제전’이 열린다.

행사 기간 중 50여 명의 한국 작가가 ‘평화의 길’을 주제로 작업한 작품 200여 점을 헤이그 시청에 전시하며 13일에는 ‘Korea는 어떻게 세계로 나왔는가? 그리고, 대한제국은 왜 헤이그에서 쓰러졌는가’를 주제로 한 학술대회가 열린다.

14일에는 헤이그 시내 신교회(Nieuwe Kerk)에서 현지 교민들이 주축이 된 ‘헤이그 특사 100주년 기념식’ 공식행사가 열린다.

이상설, 이준, 이위종의 후손들이 직접 고종특사의 헤이그 도착 장면을 재현하며 헤이그 역에서부터 이준기념관까지 특사 도착을 기념하는 행렬이 이어진다.

이밖에 태권도 시범과 평화의 연ㆍ비둘기 날리기 등의 부대행사도 준비됐다.


◇헤이그 특사 기념 학술행사= 3인의 특사가 헤이그 현지에서 벌인 구국 활동과 그에 대한 각국의 반응, 일본의 대응 등을 조명하는 학술대회도 줄을 이었다.

일성이준열사기념사업회는 6월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이준 열사순국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발표자로 참석한 정숭교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총괄과장은 ‘이준의 행적 및 고종의 특사로 발탁된 배경’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친일에서 항일로 극적인 변화를 보인 이준의 생애를 재조명했다.

고려대 BK21 한국사학교육연구단과 고대 민족문화연구원이 ‘1907년 헤이그 평화회의와 대한제국 그리고 열강’을 주제로 개최한 학술회의에서는 네덜란드 레이덴 대학 쿤 취스테르 교수의 발표가 관심을 모았다.



                                       헤이그밀사 이위종


취스테르 교수는 3인의 특사를 바라보는 각국 대표의 시선과 언론의 보도에 초점을 맞췄다.

각국의 대표는 특사의 대표성부터 의심했으며 주요 언론은 다소 흥미로운 불청객 정도로 인식했다.

취스테르 교수는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특사들이 적극적인 구국활동을 펼쳤으며 특히 이위종의 대언론활동은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개최한 학술대회에서는 이준 열사의 사인을 둘러싼 논란을 분석한 이명화 독립운동연구소 책임연구원의 논문이 소개됐다.

이명화 연구원은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의 보도 등을 통해 이준 열사의 죽음이 할복자살로 잘못 알려진 경위를 밝히고 이준 열사의 죽음은 애국정신의 상징적 교재가 된 점을 높이 평가했다.

동국대 한철호 교수도 ‘만국평화회의와 한미관계’라는 논문에서 영국의 외교문서를 근거로 당시 이토 히로부미 조선총독부 통감이 고종의 특사 파견을 미리 알고도 이를 저지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펴 눈길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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