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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과의 만남] ‘코리아 국제학원’ 설립 추진 재일동포 김시종-경향신문(07.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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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과의 만남] ‘코리아 국제학원’ 설립 추진 재일동포 김시종 

 
-“민족자존·다문화 공생 겸비한 젊은 인재 양성”-



            지난 12일 일본 오사카의 대표적 한인촌인 쓰루하시에서 만난 재일동포 시인 김시종씨.
            코리아 국제학원 설립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과거 이념과 민족의 틀을 뛰어넘는
            새로운 형태의 동포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사카/박용채특파원


이념, 국적, 민족… 해외동포들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화두다. 특히 일제 강점 상황에서 일본에 뿌리 내린 재일동포들에게 이들 화두는 오랫동안 어깨를 짓눌러온 사안이다. 실제 재일동포들은 지난 세월동안 일본사회의 뿌리깊은 차별과 냉대 속에서, 남과 북으로 나뉜 한반도의 대리전을 펼쳐왔다. 이런 재일동포 사회에 기존의 틀과 속박을 뛰어 넘는 새로운 학교가 설립된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총련)으로 상징되는 이념의 틀, 한국인·조선인·귀화 일본인으로 구분되는 국적의 속박 속에서도 실제로는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했던 재일 사회에서는 새로운 시도다. 학교명은 남도 북도 아닌 ‘코리아 국제학원’(KIS)으로 정해졌다. 지난 5월말 발기인 대회를 거쳐 내년 4월 개교를 목표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12일 오사카(大阪) 최대의 한인촌인 쓰루하시(鶴橋)에서 KIS 설립준비위원장이자 재일문학계의 대부인 시인 김시종(金時鐘·78)씨를 만났다. 그는 “현재 재일동포의 실존은 과거의 틀로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중층화(重層化)돼 있다”며 “민족적 정체성과 자존 감정을 키우면서 다(多)문화 공생 사회를 향한 젊은이들을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학교 설립 준비는 어떻게 돼 가고 있습니까.


“내년 4월에 중·고교 1년 과정으로 각각 35명씩 모집할 예정입니다. KIS는 중·고등 일관고 개념으로 갑니다. 강상중 도쿄대 교수, 박일 오사카대 교수, 소설가 양석일씨 등 동포사회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학교 설립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미 동포 사업가들의 참여로 오사카부 이바라키에 학교 터전을 마련했습니다. 초기 운영 자금 모금 작업도 순조로운 상태입니다. 경향신문을 비롯한 한국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준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현 상황에서 왜 이런 학교가 필요합니까.


“재일동포 사회는 중층화하고 있습니다. 당장 한국적에 조선족, 일본국적, 이중국적 등으로 분화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최근 들어 남쪽에서 건너온 ‘뉴커머’로 불리는 새로운 동포세대까지 늘고 있습니다. 동포의 실존이 이전처럼 이념과 민족의 틀로 규정할 수 없게 됐습니다. 남북의 본국과 재일동포라는 단일 관계로 파악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시야를 넓혀 일본에서 살아가는 의미와 전망을 새로 발견해 내야 합니다. 경계를 넘어 세계에 적극 관여해가는 월경인(越境人)이 필요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새 학교에서는 공부와 비즈니스 무대에서 자유자재로 여러 국가와 경계에 걸쳐 활약할 수 있는 지성을 가진 인물을 배출하려 합니다. 그래서 교육이념도 ‘다문화 공생’을 내세웠습니다. 민족적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고 자존을 지키면서 다문화 공생사회를 향한 젊은이들을 양성하겠다는 뜻입니다.”


-일본내의 민단 학교와 총련계 학교만으로는 안된다는 뜻입니까.


“민단과 총련의 민족학교는 그동안 동포사회의 정체성을 유지해오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들어 민단과 총련 민족학교는 동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한국계 학교는 10곳도 안됩니다. 그동안 민족교육의 큰 비중을 차지했던 총련계는 일본사회의 반북 여론으로 주홍글씨가 새겨지면서 급격히 위축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일동포 청소년들은 선택에 혼란을 느낍니다. 정체성 혼란도 더욱 심각합니다. 이념과 체제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민단과 총련의 교육만으로는 더이상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게 우리의 판단입니다.”


-재일동포들에게 민족은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현재 재일동포는 이미 3세, 4세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들은 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어로 생활합니다. 그들에게 민족의식은 많이 풍화됐습니다. 일본의 동화정책에 따라 귀화도 합니다. 물론 그들에게 이런 행동은 죄악이 아닙니다. 생활 터전이 일본이니까요. 그러나 저는 이미 사망했거나 현재 80세 전후인 1세대들에게 이같은 민족의식 풍화는 죄악이라고 여깁니다. 과거 세대들은 조국의 명운과 떨어져 살지 않았습니다. 당시 먹고살기는 힘들었지만 일본 동화를 거부했습니다. 본국을 금과옥조로 여겼지요. 마늘냄새 난다고 멸시받았지만 그래도 김치를 먹었어요. 김치가 이제 일본 문화의 하나가 된 것도 따지고보면 1세대들이 차별 속에서 우리 것을 지킨 성과입니다. 다만 이제는 우리만이 사는 게 아닙니다. 일상적으로도 국경을 건너오고, 건너갑니다. 이는 민족의식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하는 방법을 알고 제 나라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재일 동포들에게 조국은 어디입니까.


“재일동포 실존 얘기를 하면 조금 복잡합니다. 여전히 식민지 통치의 멍에 아래 남과 북으로 갈려 있습니다. 과거에는 집안에서 부자간에도 총련과 민단으로 갈려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민족교육은 우리 언어를 배우는 것입니다. 언어는 사람의 의식과 관련 있으며, 인간의 사고는 언어에 따라 배양됩니다. 그러나 언어를 배우면 뭣합니까. 그 언어가 동족 융합이 아니라 상대방을 찌르는 비수로 작용해왔습니다. 그런 분단 상황에서도 민단과 총련은 재일사회에서 함께 존재해 왔습니다. 정치사상과 이념의 차이가 있어도 함께 살 수밖에 없는 게 재일의 실상입니다. 이런 면에서 재일동포들은 통일을 선험(先驗)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본국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통일의 선험성이 훗날 한반도가 하나가 됐을 때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김시인은 한때 남과 북 양쪽에서 모두 기피인물이었습니다.


“제 고향이 원산입니다. 일곱 살 때 제주로 이주했고, 4·3항쟁을 겪고 해방 직후에 일본에 건너왔습니다. 당시 저는 북한을 ‘정의의 국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남한은 친일파, 민족 반역자들을 중용하면서 조선총독부 법령까지 계승했습니다. 문학계에서도 천황숭배 글을 쓰고 태평양전쟁 선전 등 이른바 ‘황도문학’을 하던 인물이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에 비해 북한은 토지개혁, 노동권 인정 등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에 건너온 뒤에도 사회주의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일본에서 글을 쓰는 데 지도자 찬양 글귀를 넣도록 지시받을 정도입니다. 이에 따라 남에서는 반한(反韓) 분자, 북에서는 변절주의자로 불렸습니다. 현재 저에게 조국은 남도 북도 아닌 우리나라 한반도입니다.”


-지난해 총련과 민단이 화합선언을 했지만 결국 백지화됐습니다. 거리가 메워지기란 여전히 쉽지 않은 일로 보입니다.


“총련·민단 화합발표를 보면 과거의 7·4 남북 공동성명이 떠오릅니다. 당시 남북 모두 공동성명을 환영했습니다. 금방이라도 남과 북이 가까워지는 것으로 생각했지요. 그러나 7·4공동성명은, ‘밑천 없는’ 화목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켰습니다. 윗선에서 어느날 갑자기 일방적으로 손을 잡은 것에 불과했던 것이죠. 밑에서 풀뿌리 교류가 밑천이 되면 좋은 데, 그러질 못했어요. 총련·민단이 화해하자고 합의한 것은 반갑고 고마우며 가슴 따뜻한 일입니다. 그러나 합의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동포 교류가 창조적으로 이끌어져야 합니다. 예컨대 3·1절이나 광복절 등 양측이 모두 생각이 같은 부분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서로 간의 주권만을 주장하면 안됩니다. 여기에 양 조직 간의 악수를 바라보는 일본사회의 시각을 경시한 측면도 있어요. 합의발표 뒤 민단 내부에서 혼란이 제기된 것도 결국은 일본사회를 일정부분 의식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납치문제로 인한 일본사회의 대북 불신감이 갈수록 강경해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위안부 문제 대응을 보면 과거 회귀성향으로 치달으면서 우려도 나옵니다.


“아베 신조 정권은 납치문제에 대한 강경대응으로 인기를 얻고 총리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북한이 일본인을 납치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납치가 국가적 범죄라는 것을 인정하고 사죄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오히려 강경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반북 감정과 맞서 다투면 안됩니다. 총련에서도 북이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겸허해야 합니다. 그래야 과거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가했던 잘못된 과거사를 당당히 얘기할 수 있습니다. 위안부, 강제징용 등은 민족의 수난입니다. 몇 명을 납치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일본 학자들 통계로는 강제징용자만 수십만명에 이릅니다. 이들의 가족까지 포함하면 수백만명입니다. 이 중 얼마나 죽었는지도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납치에 대해 겸허하게 대응하면서 과거 일본이 저지른 잘못을 알게 해야 합니다”


〈오사카|박용채특파원〉


▲ 김시종 시인은 누구?


재일(在日) 1세대를 대표하는 동포 시인이다. 소설 ‘화산도’의 작가 김석범씨와 함께 재일 동포 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매김된다.


일본 NHK가 그의 삶과 문학을 다룬 ‘진혼의 여정’을 제작할 만큼 일본 시단에서도 위상을 인정받고 있다. 일본 내부에서는 특히 사상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그의 시 곳곳에서는 조국 분단, 재일동포 사회의 분열, 일본의 차별 등이 짙게 배어 있다.


시 ‘똑 같다면’에는 조국과 일본 사이에서의 번민이 이렇게 그려져 있다. ‘고국과 일본/ 나 사이에 얽힌/ 거리는 서로 똑같다면 좋겠지/ 사모와 견딤/ 사랑이 똑같다면/ 견뎌야만 하는 나라 또한/ 똑같은 거리에 있겠지’


그는 지난 12일 기자와 만나 스스로를 ‘사회주의 확신범’이라고 강조했다. 노동 착취는 물론 경쟁 교육, 노후 걱정 없는 이상사회라는 주장이다.


함경도 원산에서 태어난 뒤 7세때 가족과 함께 제주로 이주해 성장하면서 해방 뒤 현지에서 4·3항쟁을 겪었다. ‘빨갱이’로 낙인 찍혀 일본으로 건너와 오사카에 정착했다. 재일 초기에는 나카니시(中西) 민족학교를 열어 조선말을 가르치는 등 민족교육에도 가담하면서 북측의 주장에 동조했다. 이 때문에 과거 남쪽에서는 친북(親北) 금기 인물로 분류됐다. 하지만 차츰 북한의 사회·권력의 실체에 위화감을 느끼면서 북한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남과 북 모두를 아우르고 있다.


재일동포의 애환을 그린 이카이노시집(1978), 광주항쟁을 노래한 연작시집 ‘광주시편’(1983) 등 다수의 시집과 평론집을 냈다. 2004년에는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일본어로 번역출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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