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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학자, 우리가 외면한 조선문학의 예술혼을 비추다-경향신문(07.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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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학자, 우리가 외면한 조선문학의 예술혼을 비추다



‘친일파로 비판받는 시인 김종한의 문학성에 대한 애정, 북한 문학과 북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 제주도 문학과 역사에 대한 연구….’

한국인 학자의 연구가 아니다. 일본인 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 인하대 초빙교수(74·전 와세다대 교수)의 학문적 성과다. 유가족이 보관하고 있던 시인 윤동주의 육필 원고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열람하고, 시인의 무덤 역시 처음으로 확인한 오무라 교수가 한국 근대 문학과 관련해 이룬 업적은 크다. 그런 그가 일본 일반인들에게 조선(남북한) 문학을 소개하기 위해 쓴 에세이들이 ‘조선의 혼을 찾아서’(소명출판)란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다. 일본 ‘홋카이도신문’에 2000년 4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연재한 글을 묶은 책이다.

지난 13일 인천의 인하대 연구실에서 만난 오무라 교수는 “한국문학에 대해 잘 모르는 일본 사람들을 대상으로 쓴 글이라 한국 사람들은 다 아는 내용일 것 같은데 한국에서 출판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궁금하다”고 말을 꺼냈다. 같이 자리를 한 오무라 교수의 부인 오무라 아키코 여사가 덧붙여 설명했다. “일본에 꼭 남기고 싶은 한국 문학을 번역하는 것만으로도 바빠 다른 일은 하지 않는 선생님이지만, 한국 문학을 모르는 일본 지방 사람들한테 한국 문학을 알리기 위해 예외적으로 신문에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소설가 강경애와 그의 작품을 20여년간 연구한 끝에 번역을 시도하는 사람이 오무라 교수다. 그런 그가 시간을 쪼개 원고지 800자짜리 글쓰기에 시간을 내고 있다. 아키코 여사의 말대로 한국 문학을 일본 대중에게 알리고 싶은 오무라 교수의 뜻이 연구 원칙에 예외를 만든 것이다.

오무라 교수의 ‘우려’와 달리 이 책은 한국인에게도 가볍지 않다. 한국인이 편견을 갖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 오히려 자유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윤동주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피력한 그는 동요시인으로서의 윤동주를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친일파로 꼽히는 시인 김종한에 대해서는 “헌법의 틀 안에서 친일을 거부했다”면서 친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북한 문학과 북한 사람에 대한 관심도 드러낸다. ‘겸허하게 살아가는 북한의 일반 시민’이란 글에선 “일본에서 말하고 있는 정도의 참상은 북한이 겪고 있지 않다”며 선봉·나진 일대에서 본 북한 풍경을 말하고 있다. “일본에선 북한을 악마처럼 묘사하지만 북한의 일반 서민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오무라 교수는 말했다. 그는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북쪽은 천국, 남쪽은 지옥이었던 것이 역전됐다”면서 “북한 문학은 과거보다 경직됐지만 일본에 번역된 북한 아동 문학이 많이 팔린 적도 있는 등 북한 문학과 사회에서 의미 있는 내용들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관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통일문학전집의 간행으로 활발한 교류 모색’, ‘높아지는 북한 문학 연구열’ 등 남북관계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시선도 느낄 수 있다. ‘무거운 과제 짊어진 제주도’에서는 제주도의 문학과 역사를, ‘찾는 사람 드문 포로수용소의 자취’에서는 거제도 수용소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조선문학에 대해 왜 애정이 많으냐고 때때로 한국사람들한테 질문을 받습니다만…. 재밌어서 하는 것이지요. 대학원 석사 논문을 준비하던 시절, 한 소설에서 조선을 놓고 중국과 일본이 서로 자기 땅이라고 하는 것을 보고 도대체 조선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당시 뭘 생각하고 있었는가가 궁금했습니다.”

또 조선문학의 예술성에 대한 감동에서 시작된 연구는 치밀한 사료 확인을 바탕으로 하는 오무라 교수의 연구방법과 맞물려 한국인이 시도조차 하지 않은 문제의식과 연구 성과를 내놓게 했다. ‘한 작품에 텍스트는 13종’, ‘시혼의 원형을 찾아서’ 등의 글을 보면 한국 문학연구자들이 얼마나 안이하게 텍스트를 대했는지 실감할 수 있다. “한국에서 윤동주의 사상에 대한 연구는 아주 발달했지만 윤동주의 어느 텍스트를 인용했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어요. 기초작업이 부실합니다. 문제가 있죠. 식민지 시대를 미워한다면 꼼꼼히 연구해야 사실이 나오지 나쁘다고만 하면 안되지요.”

1986년 오무라 교수가 윤동주 육필원고를 직접 본 과정은 이같은 상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아키코 여사의 설명이다. “처음엔 유가족들이 원고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교수님이 일본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그때까지도 한국 사람 중 원고를 보여달라고 찾아온 사람이 없었다는 겁니다. 책 만들게 원고를 팔라는 사람은 있었어도 연구하기 위해 원문을 보고 싶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거죠.”

유가족은 오무라 교수의 뜻에 감동해 원고를 보여주긴 했지만 “우리가 보여줬단 얘길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 윤동주의 육필 원고를 보기 위해 처음 찾아왔단 사실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오무라 교수는 이 사실이 다른 경로로 밝혀지기까지 10년 동안 약속을 지켰다.

일본인으로서 일본 주류와 다른 비판의식을 갖는 학자가 갖는 어려움은 없느냐는 질문에 오무라 교수는 “아직 힘이 없으니까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기영의 ‘고향’ 등 한국 근대 장편 소설을 계속 번역해 일본에 내놓고, 제주도 시와 옌볜의 시도 일본어로 번역할 수 있다면 저승에 가도 한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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