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사학의 결정판 ‘대한민국 이야기’>

Y. 이영훈(李榮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민족’ 대신 이기심 갖춘 인간 개체를”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李榮薰. 56) 교수는 논란이 가장 많은 국내 연구자 중 한 명이다. 그리고 그 논란의 대부분은 비난 일변도다. 그를 지칭하는 많은 표현 중 ‘식민지근대화론자’는 ‘식민지배 찬양론자’에 비해서는 그래도 후한 말이다.
이런 그가 최근에 내놓은 ‘대한민국 이야기'(기파랑)는 ‘이영훈 사학’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이번 단행본은 그의 어떤 글보다 쉽게 읽히고, 분량 또한 200자 원고지 1천장이 채 되지 않는다. 나아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라는 부제는 이번 책이 그 자신이 편집인 중 한 명으로 참가해 기획한 한국근현대사 총서인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의 해설판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이 교수 개인으로서는 당분간 이번 책을 뛰어넘을 만한 업적을 내기 힘들다고 할 만큼, 그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자 한 흔적이 감지된다. ‘재인식’에 수록된 다른 연구자의 논문을 참고해 해설하기도 하지만, 그것들을 한데 녹여 자신만의 역사철학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주물하고자 한다.
전편을 관통하는 가장 큰 줄기는 민족주의에 대한 격렬한 혐오감,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일견 모순된 듯한 자세 때문에 그를 ‘국가주의자’ 혹은 ‘사이비 탈민족주의자’로 규정하는 사람도 많다.
이에 대해서는 “국가가 중요하다는 주장을 어찌 국가주의로 오독하는가”라고 되묻는다.
이 교수는 민족주의가 한국사회에 초래한 재앙의 대표적 사례로 ‘일제수탈론’을 제기하면서, 그 허구성의 예로 대표적인 민족주의자 단재 신채호가 1923년에 쓴 ‘조선혁명선언’을 들이댄다.
단재는 “강도 일본”이 저지른 만행들로 토지세ㆍ가옥세ㆍ인구세ㆍ가축세ㆍ지방세 등의 각종 잡세를 신설한 사실을 거론했으나, 이는 “죄다 공권력에 의한 공적 통치행위의 영역”에 속할 뿐이지 수탈 항목이라고 규정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식민지배가 가져온 엄청난 변화 중 하나로 완전한 신분해방을 꼽는다. 예컨대 1905년 을사조약 이후 경북 예천군 맛질이란 농촌의 한 양반이 남긴 일기에서 발견되는 “동리의 상놈(常漢)들이 양반을 칭하고 옛날 호칭은 간데 없고 (양반과) 다툴 때는 상말을 하니”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나아가 식민지배 치하에서 이른바 친일부역배 상당수가 종래 조선왕조에서는 ‘상놈’이나 마찬가지로 지배계층에게 천대받던 중인 출신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중인이나 상놈의 시각에서 본다면 신분해방이 도래한 식민지시대는 실로 살맛 나는 세상일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중인층 출신이 다수를 점한 소위 친일파도 다른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나아가 식민지 조선이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했으며, 그에 따라 사회전반의 생활수준 또한 상승한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실상 ‘이영훈 사학’의 가독성은 이 지점까지다. 이 대목까지만 읽은 많은 독자가 책을 덮고는 대뜸 “결국 식민지배는 한국에 축복이었다는 말이군”이라고 분개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교수는 정말로 ‘식민지배 찬양론자’일까?
“식민지근대화론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일제의 조선지배를 미화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만 천만의 말씀”이라는 그는 “진정한 의미의 수탈과 차별이 (식민치하에서) 어떠한 메커니즘을 통해 벌어졌는지를 제대로 보자는 것이 식민지근대화론”이라고 답변한다.
식민치하를 ‘선량한 조선’을 ‘강포한 일본’이 ‘친일파’를 앞세워 유린한 시대였다고만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런 이해는 흔히 불완전한 국가로 간주하는 대한민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 교수에게 대한민국은 그 자체로 완결된 구조를 갖는 사지 멀쩡한 생물체에 다름 아니다.
이 과정에서 역사의 주체로 오랫동안 자리한 ‘민족’을 축출하는 대신, 그 자리에 ‘분별력 있는 이기심을 본성으로 하는 ‘인간 개체’를 내세운다. 이렇게 되면 하나의 모습으로 그리던 식민지시대만 해도 다양한 인간군상이 꿈틀대던 사회로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영훈에게 역사는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물음이 아니라 서술형 논술인 셈이다. 326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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