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재산 환수 첫걸음…반발과 자료 부족을 넘어라
친일재산의 국가귀속 첫 결정을 시작으로 반민족 행위를 통해 치부했던 친일파와 그 후손들의 재산을 환수하는 작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반민족행위자 452명의 가계도를 만들어 이들이 숨겨 놓은 재산을 낱낱이 찾아내 환수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친일 후손들의 반발과 증거자료 부족 등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어 어려움이 예상된다.
◇국가 귀속 친일재산은 빙산의 일각=조사위가 2일 국가 귀속 결정을 내린 이완용 등 친일반민족행위자 9명의 재산은 25만4906㎡로 이들이 일제 강점기에 모은 재산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다. 이들은 1910∼18년 토지조사 사업과 1916∼24년 임야조사 사업 당시 3994만6266㎡의 땅을 소유했으나 이번에 환수당한 토지는 0.64%에 불과하다.
한일합병조약 당시 내각 총리대신을 지낸 이완용·병길 부자는 정미칠조약과 한일합병의 대가로 각종 하사금과 국유지를 받았다. 이들은 이를 다른 사람에게 매각해 생긴 차익으로 전북 군산과 김제 부안 일대의 논을 집중 매입해 1572만9167㎡의 땅을 소유했다. 그러나 이번에 귀속된 이들의 토지는 1만4912㎡로 0.09%에 불과하다. 특히 이완용은 한일합병의 공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은사공채 15만원(현재 금값 기준 30억원)을 받았고 1910년대 보유 면적이 확인된 땅만도 여의도 면적의 1.9배였지만 일제 강점기 초기에 모두 처분했다.
또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송병준은 장남 송종헌과 함께 856만8298㎡의 토지를 챙겼으나 고작 3360㎡(0.04%)만 환수당했을 뿐이다. 이번 결정으로 가장 많은 토지가 국가에 귀속된 고희경의 부동산 국가 귀속률 역시 15.8%에 불과하다.
◇친일재산 환수 난관 많아=조사위는 반민족행위자들의 은닉 재산을 추적해 적극 환수한다는 계획이지만 넘어야 할 고개가 많다.
특별법 이전에 처분된 경우나 토지가 아닌 재산에 대해서는 조사 개시 및 국가 귀속 결정이 곤란한 실정이다. 해방 이후 토지를 팔아 재산을 증식·변형시킨 경우 재산을 추적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전쟁 당시 친일재산을 추적하는 단서가 될 관련 공문서가 상당수 멸실된 것도 재산 추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7월 발족된 조사위는 2010년까지 4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되는데다 조사 인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조사위 관계자는 “전 직원 104명 가운데 조사 업무에 투입되는 인원은 고작 40여명”이라면서 “전국에 흩어진 땅을 답사하고 사람을 만나 조사하는데 손이 달린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친일 후손 집단 반발 가능성 커=친일행적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후손들의 반발도 거세다. 고희경 조중응의 후손은 각각 지난해 말 친일재산조사위의 조사 개시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데 이어 물밑에서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재산 귀속 결정이 내려진 친일파 9명 중 고희경 조중응 등 2명의 후손은 조사위에 이의신청을 냈지만 기각됐다.
이번 결정으로 가장 많은 토지가 국가에 귀속된 고희경은 정미칠조약 당시 탁지부(현 재정경제부 기능) 대신인 고영희의 장자로 자작을 물려받은 뒤 백작으로 승작해 중추원 고문, 이왕직 왕세자부 사무관 등 관직을 맡았다. 또 조중응은 정미칠조약 당시 법부대신, 한일합병조약 당시 농상공부대신을 지낸 뒤 자작을 받아 중추원 고문 등을 역임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행정소송이 무더기로 제기될 가능성이 있어 소송이 끝날 때까지 국가 귀속을 보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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