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키타이 안’ 안익태에 드리워진 친일의 그림자
[서평] <잃어버린 시간 1938∼1944>

▲ <일어버린 시간 1938~1944>겉그림
ⓒ 휴머니스트
<애국가>와 <코리아 환상곡>의 작곡자이면서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1943년 8월) 세계적인 음악가 안익태(1906~1965).
지난 2006년은 안익태 탄생 100년이 되는 해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 <애국가>로 알려진 안익태의 친일행적 미공개 자료들이 속속 밝혀지면서 애국과 친일 논쟁이 분분했다.
<잃어버린 시간 1938∼1944>는 이렇듯 팽팽한 논쟁에 확실한 결론을 제시해 줄 만한 책이다. 제목에서 제시하고 있는 1938∼1944년은 안익태에게 음악가로서 최고의 영광이 주어진 기간이다. 그럼에도 그의 1940년 전후의 음악활동과 작품 기록은 거의 사라진 상태다.
오죽했으면 세계적인 음악가의 명성을 안겨준 1943년 베를린 필하모니 연주에 대한 기록조차 없이, 연주회 장면이나 지휘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몇 장이 전부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몇 장의 사진을 토대로 안익태의 영광은 우리에게 전해져 왔을 뿐이다.
성격이 꼼꼼하고 치밀하기로 소문난 그가 (하필 1938년에서 1944년까지만) 기록을 외면한 걸까? 아니면 기록한 것을 누구에 의해 잃어버린 걸까? 아니, 기록한 것을 무슨 의도를 가지고 애써 덮고 있는 걸까?
보이지 않는 <코리아 환타지>의 존재를 찾아서
‘나치시대 망명 음악’을 연구한 음악학자인 저자가 안익태의 삶에 궁금증을 가지게 된 것은 독일 유학시절에 접한 한 작곡가의 전기, 즉 그동안 우리에게 안익태의 스승으로만 알려졌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전기에서 만난 ‘에키타이 안(Ekitai Ahn)’ 때문이다.
책에는 나치에 협력했던 슈트라우스가 일본 황제의 위촉으로 작곡한 ‘일본 축전곡’을 일본 대사에게 악보로 전달하는 사진이 실려 있었는데, 사진과 함께 설명된 앞뒤의 글 중에 안익태, 즉 에키타이 안이 지휘한 빈 연주회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능한 음악인들이 독일을 떠나 미국과 영국으로, 아르헨티나와 일본으로까지 살길을 찾아 망명했을 때, 오히려 나치 독일의 중심부 베를린으로 가서 음악적 성공을 꾀했던 안익태. 아리아인도 아닌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히틀러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막강한 음악 권력자 슈트라우스와는 어떻게 알게 되었으며 실제 어떤 관계였는가?”

▲ 1942년 3월 12일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
휘 기념.당시 안익태가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서명해준 사진으로 추정된다( 빈 심
포니 오케스트라 문서보관소 제공).
ⓒ 휴머니스트
저자가 1938~1944년의 에키타이 안, 즉 당시 안익태의 행적을 좇는 과정에서 주목한 것은 독일과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는 문화친목단체 ‘일독회(日獨會)’다. 일본과 독일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주축이었고, 음악회나 전시회, 공연 등을 기획하여 열었는데 안익태는 일독회에서 연주곡을 지정할 만큼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다?
저자는 베를린 국립문서보관소 등의 수많은 보관 자료에서 안익태와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 당시 독일과 일본의 동맹관계 속 안익태의 일독회 관련 음악활동과 일독회에서의 위치, 영향 등을 집중 조명해낸다. 그러는 한편, 독일에서의 음악 스승으로 알려진 슈트라우스와의 만남과 관계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그동안 우리에게 알려지기를 안익태가 슈트라우스와 사제 관계가 된 것은 1938년부터요, 제자의 뛰어난 재능을 후원하는 스승 덕분에 유럽에서 음악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었고, 음악가로서 최고의 영광(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지휘 등)까지 누릴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슈트라우스의 제자가 된 것은 1943년 일독회 행사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유럽 시절부터 애국가가 포함된 ‘코리아 판타지’를 연주했다고 밝혀진 것과는 달리 안익태는 한 번도 ‘코리아 판타지’를 연주한 적이 없다? 게다가 그동안 우리에게 알려진 사실들과는 전혀 다르게 일본 황실 음악을 토대로 작곡한 ‘에텐라쿠’를 주로 선보이는 등 일본 음악가로서의 이미지를 높이고자 애썼다? 의문 투성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독일 국립문서보관서 뿐 아니라 그외 독일에서 확보된 1940년대 음악비평과 프로그램 등의 자료에서 지금까지 안익태의 대표작으로 여겨지는 코리아 환타지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가 코리아 환타지를 지휘했다고 하는 연주회가 모두 포착되지 않은 것일까? 안익태는 일독회와 관련 없는 다른 연주회를 가진 것일까? 그렇다면 그는 어디서 코리아 환타지를 연주했는가? 아니면 코리아 환타지를 지휘했다는 그의 말은 모두 사실이 아닌 허구인가?” – 책속에서
독일에서 ‘에키타이 안’이란 이름의 일본인이었고 늘 일본음악가였던 안익태. 2차 세계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전후, 일본의 동맹국 독일에서 열리는 연주회에 과연 코리아 환타지가 설 수 있었을까? 책 속에서 만나는 새로 발굴된 자료에는 코리아 환타지가 있어야 할 자리, 안익태가 제시한 정보에 따라 코리아 환타지가 있어야 하는 그 자리에 언제나 ‘에텐라쿠’가 있다.
그렇다면 ‘코리아 환타지’와 ‘에텐라쿠’는 동일 음악?
우리가 잃어버린 1938∼1944년을 찾아서
<잃어버린 시간 1938∼1944>는 전체 6장. 1장에서 5장까지는 독일에서의 안익태의 음악활동, 일독회 활동, 스승으로 알려진 슈트라우스와의 관계, 코리아 환타지의 존재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 행적을 찾아다녔다.
6장에서는 1938년까지만 해도 민족의 독립을 걱정하던 애국자 안익태와 1942년 일본이 만든 만주국의 음악대사로, 또는 일본 제국의 외교관 등과 협력하는 안익태의 모순을 설명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제시,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정리하면서 앞장의 내용들을 아우르는 형식으로 서술한다.
책의 순서대로 읽든 각 장의 주제에 따라 떼어 읽든 안익태의 삶의 한 부분들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도록 서술했다. 독일어를 전공한 저자가 독일에서 안익태의 행적을 좇아 새롭게 발굴한 자료들이 책의 전체적인 바탕이 됐다. 그동안 안익태 관련 김경래 등이 저술한 책의 내용을 필요에 따라 언급, 비교 설명하여 독자들의 혼란을 줄이려는 노력까지 더했다.
이 책은 이제까지 전혀 공개되지 않고 조용히 숨어 있던, 저자에 의해 새롭게 발굴된 자료들이 풍성하게 수록하고 있어서 자료가치가 높다. 이 자료들과 함께 음악가로서 가장 화려한 영광을 안았음에도 우리에게 거의 알려진 자료가 없는 독일에서의 1938~1944년 안익태의 행적이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에 의해 숨어 있던 안익태의 친일 행적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보면서, 아쉽고 허탈했으며 안타까웠다.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던 안익태나 코리아 환타지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고 할까?
그래서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베를린 국립문서보관소, 코블렌츠 국립문서보관소, 슈트라우스 가족문서보관소(Richard Strauss Archiv),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문서보관소 등의 자료들을 증거로 하고 있는 엄연한 사실들이 아니가.
<잃어버린 시간 1938~1944>는 독일에 숨어 있는 안익태의 자료를 발굴하여 사실과 왜곡의 진실을 추적한 책이다. 식민지 시절의 수많은 예술인들에게 우리는 여전히 친일과 반일이라는 흑백 논리만 앞세울 수밖에 없는 것일까? 책을 덮고도 끝내 아쉽고 허탈한 심정은 어찌할 수 없다. 코리아 환타지는 진정 어디에 있는 걸까?
<잃어버린 시간 1938~1944>(이경분 지음/휴머니스트/2007년 3월 5일/1만3000원) 저자 이경분은 나치시기의 망명 음악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음악과 정치사회에 대해, 음악과 문학에 대해, 우리의 창작음악 그리고 영화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지은 책으로 Musik und Literatur im Exil(New York 2001), <망명음악, 나치음악>(책세상 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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