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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락한 기생·자원의 보고’ 일제는 조선을 ‘물’로 봤다-한겨레신문(07.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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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락한 기생·자원의 보고’ 일제는 조선을 ‘물’로 봤다
‘1939년 모던일본 조선판’ 번역 출간 
 
  
 
“조선은 불가사의한 곳이야, 같은 땅속에 이렇게 2천년 전의 문화가 잠들어 있고 동시에 풍부한 지하자원과 함께 무한한 미래가 묻혀 있거든.”

“그렇군요.”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발굴되는 모습이 재미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H군이 끄덕거렸다. 그리고 갑자기 옆에 있던 차××의 저고리 고름을 잡아당기며,

“이봐, 자네. 이 하얀 가슴속에는 무엇이 들었나?” “뭐라고요?”

더위에 헐떡이던 그녀의 가슴은 탄력있는 기복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기엔 무엇이 묻혀 있냐고? 그걸 발굴하는 것이 자네의 임무일세.”

» 〈모던일본 조선판〉의 화보는 평양기생과 여배우 사진 일색이어서 ‘색향 조선 특집’이란 느낌을 준다. 위부터 차례로 〈모던일본 조선판〉 표지, 부벽루의 기생, 훈련소에서 미나미 총독의 열병을 받는 조선지원병.
  
 
〈모던일본 조선판〉(1939)에 실린 가토 다케오의 단편 ‘평양’의 한 대목이다. 평양을 방문한 ‘나’가 조선인 기생을 대동하고 낙랑 유적지 발굴 현장을 찾은 때의 묘사다.

군국주의 일제가 태평양전쟁으로 치닫기 이태 전에 발행된 〈모던일본 조선판〉이 〈일본잡지 모던일본과 조선 1939〉(어문학사)라는 제호로 번역·출간됐다. 일본 문예춘추사가 창간한 이 잡지는 1930년 10월부터 1942년 12월까지 통권 13권 12호가 발행되었는데, 사장은 마해송으로 최근 친일 좌담이 불거진 바 있는 조선인이다. 이 잡지에는 식민지가 되어 한 세대가 지난 당시 일본인이 조선의 어떤 모습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생생히 담겨 있다.


평양기생 여배우 운운 저급한 좌담


잡지에 반영된 당시 일본인의 조선관을 요약하면 기생, 천연자원, 퇴락 세 가지다.

표지부터 그렇다. 당시 영화 〈국경〉으로 인기가 높았던 여배우 김소영이 치마 사이로 버선발을 드러낸 채 비스듬히 누워 있다. 이어지는 화보는 평양의 고적을 배경으로 한 여러 장의 평양기생 사진과 여배우 문예봉, 한은진, 무용가 최승희의 요염한 포즈로 구성돼 있다. 이어붙인 퇴락한 초가집 사진과 권말 ‘조선명인백선’이 동전만한 사진과 약력이 전부인 것과 대비된다. 본문도 곳곳이 기생 얘기다. “조선 기생은 이왕가 박물관의 백청색 도자기 같다”는 야마가와 히데미네의 잡글, 마해송 외 8명의 일본인이 나와 평양 기생과 조선 여배우가 어떻더라며 껄떡거리는 ‘새로운 조선에 관한 좌담회’가 실렸다. 또 조선을 소개하는 조선독본과 나란히 기생을 독립항목으로 두었으며 뒤이어 춘향전, 심청전을 두어 주인공이 기생인 듯한 착각을 부른다. 한재덕은 ‘기생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나’에서 기예(妓藝)와 기술(妓術)을 넘어 기학(妓學)을 가르친다고 초를 치고, 나아가 평양 기생과 여성 12명을 모아놓고 시시껄렁한 뒷얘기를 하면서 일본 남성 독자의 시선을 잡는다.

‘조선 공업의 약진’에서 노자키 류시치는 조선에는 △노동력이 저렴하다 △세금이 싸다 △철, 금 등 지하자원과 전력이 풍부하다 △공장법이 없다며 ‘공업적인 제조건’이 완비되어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조선은 기생과 천연자원의 보고라는 얘기다. 이 잡지가 30만부가 팔리고 300부를 더 찍었다는 속사정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일제의 발악은 내선일체의 강조와 지원병 제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에서 드러난다.

미타라이 다쓰오가 쓴 ‘내선일체론’의 일부.

“내선일체는 동아의 환경이 명령하는 자연의 제약이다.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대국가군 시대가 된 오늘날, 장차 소수민족의 할거적 존재는 점차 불가능하게 되었다. 내선 두 민족은 이제 분립해서는 생존할 수 없다. 단지 내선 두 민족뿐 아니라 동아의 전 민족은 하나의 공동운명체로서 합작 협력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내선일체 지원병 선동 거의 발악


조선총독부 학무국장 시오하라 도키사부로는 “조선인에게도 병역의무를 부담하게 하라는 조선민족의 요망은 중일전쟁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미 만주사변 당시부터 서서히 고양된 것”이라며 지원병 제도와 그 현황을 자세히 설명한다. 물론 중일전쟁 초기 남원(南苑)전투에서 대대장으로 선전했다는 김석원 중사를 비롯해 육군 중사 이응준, 비행사 신용욱 등 잡지 곳곳에 모범 사례를 심어 놓았다. “황군이 어떻게 고생하고 있는가를 확실히 주지시키고 황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불러일으켜 후방의 국민으로서 각오를 바르게 하도록” 〈보리와 병정〉을 조선어로 번역한 니시무라 신타로의 소감, 친일파 문인 임학수가 전선을 다녀와서 쓴 르포문 ‘북지(北支)전선을 다녀와서’도 눈에 띈다.

잡지를 번역 출간한 어문학사 관계자는 이 잡지가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돼 있지만 희귀도서로 분류돼 열람할 수 없어 일본 간사이대 도서관의 것을 영인했다며 또다른 조선판인 1940년 발행분도 출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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