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사설]언론과 과거청산-미디어오늘(07.02.07)

379

[사설]언론과 과거청산  
 
 
 
경향신문이 얼마 전 군사독재정권 시절 언론 본연의 소명과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을 국민 앞에 사과했다. 신선한 충격을 준 행동이다. 개인이나 집단을 불문하고 자신의 과거 잘못을 스스로 끄집어내어 사과하기는 어렵다. 대단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다른 언론도 같은 모습을 보였으면 했으나 그런 기미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인혁당 사법살인과 긴급조치 판결 피해자 문제와 함께 유신언론인 등 독재세력에 직간접적으로 협조한 언론인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다시 터져나오고 있다. 87년 6월항쟁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독재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언론의 자기반성과 불행한 과거 청산 주장이 여러 번 나왔다. 하지만 대부분 흐지부지 지나가 버렸다. 이번에는 경향신문의 결단을 발판 삼아 무언가 성과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론의 과거청산을 말할 때 흔히 프랑스의 경우를 거론한다. 프랑스가 가장 강력하게 과거 청산을 했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독일 지배를 받을 때 언론인과 작가들의 부역행위가 적지 않았다. 프랑스인들의 레지스탕스 저항운동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지식인들이 독일의 프랑스 강점에 협조한 것이다. 독일이 패망한 뒤 프랑스에서는 반국가적 언론인과 작가들의 청산을 놓고 찬반양론이 거셌다. 그러나 청산하자는 주장의 설득력이 강해 대대적인 심판 작업이 벌어졌다.

당시 지식인의 반역행위는 경제적 반역행위보다 더 무겁게 단죄됐다. 독일 점령군에게 협조한 기업인보다 글로써 부역한 행위에 대한 처벌이 더 가혹했다. 언론인과 작가의 반역 행위는 당사자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오도하는 잘못이 크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언론인과 작가에 대한 심판은 신속하게 진행됐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심판 과정에서 지식인들의 범죄사실을 조사 입증하는 것이 매우 용이했던 것이다. 언론인이나 작가는 글을 통해 자신을 밝히기 때문에 범죄를 입증할 자료를 스스로 작성한 것과 같았다.

우리나라는 가혹한 일제 지배를 받았지만 일제 청산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남한에 진주한 미군정이 일제에 부역한 세력을 중용하고 이승만이 옹호한 친일세력들이 실질적인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면서 일제 청산은 저지됐다. 당연히 일제치하에서 부역한 조선, 동아일보 등을 중심으로 한 언론의 친일 행각에 대한 청산도 시도되지 못했다. 정치, 군사,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친일 청산에 손도 못 댄 상황에서 언론에 대한 반민족적 행위에 대한 문제제기 또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 청산이 이 나라의 화두로 등장한 것은 박정희를 정점으로 한 친일 세력의 퇴장과 때를 같이 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저항은 엄청났다. 더욱이 독재시대에 자행된 수많은 불법 행위의 청산 문제가 동시에 터져 나오면서 일제와 독재에 기생했던 세력들의 집단적 저항이 시도됐다. 예를 들어 해방과 6·25 한국전쟁 이후 최악의 비극이었던 광주민주항쟁에 대한 진상 규명도 어정쩡한 상태에서 봉합돼야 했다. 현장 발포 책임자조차 규명되지 않은 채 내란과 쿠데타 주범들은 특사로 풀려나와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광주항쟁 당시 광주 일원을 제외하고 신군부에게 저항한 세력은 언론인이 유일했다. 하지만 이들 저항언론인들은 광주항쟁특별법에서 제외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해야 했다.

언론의 추악한 과거는 지워지지 않는다. 언론 스스로 보도를 통해 기록을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비판 언론이 언론 과거사를 보도할 때 반민족적, 반사회적 언론의 행적을 사진처럼 생생하게 보여준다(?). 언론은 더 늦기 전에 어두운 과거를 국민 앞에 사죄하는 등 진솔한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질적 양적으로 급변하는 사회 변화의 파수꾼 역할을 자임할 수 있다. 어두운 과거를 지닌 언론은 더 늦기 전에 각성하고 행동으로 보여라.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