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섭일(언론인,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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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인터넷 서점 아마존이 2월에 출판될 책을 추천해 왔다. 필립 부르드렐의 ‘나치협력세력의 괴멸’이란 책이다. 1944년 프랑스가 나치독일점령에서 해방될 때 나치협력자 숙청에 관한 자료와 저서들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보낸 이메일이다. 부드렐은 프랑스 현대사가로, 나치협력세력이 어떻게 괴멸했는지를 규명한 책을 낼 예정이다. 프랑스 사람들의 2차 세계대전 종전 전후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대단히 크다. 해마다 많은 저술들이 쏟아져 나오며, 과거사의 오점인 나치점령시대(1940-1944)에 대한 반성을 하면서 역사를 되돌아보고 내일을 설계한다.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프랑스인의 각오가 엿보인다.
지난해도 관련저서들이 다수 나왔다. 로베르 라퐁출판사의 ‘레지스탕스의 역사적 사전’은 1200쪽에 달하는 대작으로 레지스탕스 저항기록의 집대성이다. 크세주 문고의 ‘레지스탕스의 역사’와 슈민느망 출판사의 ‘해방의 화장터, 머리 깎인 여자들’도 지가를 올렸다. 나치점령군들의 정부가 되거나 애인, 또는 부인이 된 2만2천여 명의 여자들의 머리를 깎고 거리에 뺑뺑이 돌린 사건진상을 처음으로 파헤친 것이 특징이다. 특히 갈리마르 출판사는 ‘감옥에 처넣어진 비시정권-해방 후 숙청당한 사람들>이라는 나치괴뢰 비시정권지도부와 고위공직자의 투옥과 감옥생활의 진상을 들추어 낸 책을 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현재 두리미디어 출판사에서 곧 번역 출판할 예정이다.
-프랑스, 나치숙청과 레지스탕스 책 발행 정체성선양
프랑스는 해방 후 망명정부 수반인 드골장군이 나치협력자들을 모두 처단함으로써 정의롭고 도덕적이며 정통성을 갖는 민주정부를 수립했다. 레지스탕스 주도의 정부창출에 성공했다. 이것은 나치점령이라는 굴욕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를 승전 4강대국으로 인정받게 하고 유엔 상임이사국으로 업그레이드시켰다. 이러한 국가의 정체성은 오늘까지도 나치협력자를 계속 응징함으로써 잘 유지하고 있으며 끝없는 저술출판은 정체성유지의 국민적 노력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내고 임종국상을 제정해 학술, 언론, 사회부문상을 주는 정도다. 여기에 친일세력의 반격이 거세다. 독립기념관이 독립운동정신을 선양하고, 임정기념사업회가 기념관설립을 서두르고 있다.
무엇보다도 독립운동의 주체인 임시정부와 항일레지스탕스 연구가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다. 항일레지스탕스의 주체는 임시정부와 광복군 그리고 조선의용군이다. 임정과 광복군의 활동은 상당히 연구되고 있으나 조선의용군은 실종된 상태이다. 지난해8월 나는 광복군과 조선의용군유적지를 임정기념사업회주최로 대학생, 유족과 대학-고교역사 선생님 등 80여 명과 같이 답사했다. 광복군 유적지들은 표시가 전혀 없어 간신히 찾았을 정도로 방치돼 있었다. 반면 태항산의 조선의용군 유적지들은 중국이 잘 관리하며 항일무장투쟁의 열사로 모시고 있어 놀랐다.
하북성 섭현 석문촌의 태항산산록에는 항일순국열사공묘와 조선의용군열사기념관이 한국답사단을 반갑게 맞아 감동했다. 마전전투에서 전사한 윤세주, 진광화열사의 묘지를 참배하고 기념관을 방문해 항일레지스탕스의 영웅적 투쟁을 배웠다. 마전주변에는 조선의용군이 중공의 팔로군과 연합한 독립부대로서 훈련장, 병원, 군복제작소, 조선청년혁명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었다. 조선의용군은 무장선전부대로 일본군이 제일 두려워한 부대였다고 한다. 하북성 황북평촌에는 후가장 전투에서 전사한 박철동, 손일봉열사의 묘지도 중국이 잘 모시고 있었다. 입구에 ‘조선의용군 태항산지구 항일전 순국선열기념비’가 인상적이다. 조선의용군의 최초의 연구인 ‘조선의용군의 독립운동’(염인호)은 23명의 항일영웅들이 전사한 것으로 기록했다. 독립부대로 일본군과 전쟁을 펼친 항일 레지스탕스였던 것이다.
-항일 레지스탕스 조선의용군의 역사배제는 어불성설
조선의용군의 독립투쟁과 대일본 전쟁이 우리역사에서 배제 된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마도 이들이 북한으로 귀국해 6.25전쟁에서 남진했기 때문인 것 같다. 만주를 통해 귀국한 1만4천여 조선의용군은 남진병력의 47%인 10개 연대를 구성했다고 한다. 중국당학교 최용수 교수는 이들의 거의 전부가 전사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조선의용군 총사령관인 무정과 정률성 등 지도부는 1950년대 후반 연안파 종파분자로 몰려 숙청당했다. 이들은 중국지도부의 배려로 탈출에 성공했으나 북한역사에서도 이들의 존재는 완전히 제거되고 말았다.
프랑스의 반나치 레지스탕스와는 달리 조국에서 추방된 한국의 항일레지스탕스의 운명은 민족의 비극을 상징한다. 그들은 ‘동족간 전쟁에의 참전은 조선의용군의 불명예’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제 조선의용군의 레지스탕스를 우리역사에 복권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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