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강제징용 日 유바리]72만여명 참혹한 노역-경향신문(07.01.21)

353

[강제징용 日 유바리]72만여명 참혹한 노역 




            ▲ 홋카이도 사뽀로 별원에 보관중인 조선인 강제징용자 유골 명부.


일본 외무성 자료에 따르면 태평양 전쟁때 끌려간 조선인 강제연행·강제노동자는 72만4787명이다. 연행 지역은 일본 47개 도·도·부·현 전역에 걸쳐있다.

특히 탄광과 항만 등이 밀집한 홋카이도(北海道)와 야마구치(山口), 후쿠오카(福岡), 사가(佐賀), 나가사키(長崎), 후쿠시마(福島)현에 70%가 집중됐다. 조선인 연행자들이 끌려간 곳은 탄광을 비롯해 광산, 토목건축, 항만 및 활주로 건설, 공장 등이다.

강제징용 문제 연구가인 모리야 요시히코(守屋敬彦)에 따르면 1939~45년중 일본의 조선인 연행은 외견상 모집(초기), 관 알선(중기), 징용(말기) 등 3가지 방식으로 이뤄졌다. 다만 초기나 중기도 기본적으로 일본 정부 및 조선총독부의 감독, 지령에 따라 조선·일본의 관헌, 경찰관 등이 개입한 점을 감안하면 징용과 큰 차이는 없다. 연령은 20~40세가 전체의 85%를 차지하지만 1944년 징용방식으로 전환하면서 19세 미만의 청소년은 물론 농아인 등 신체장애인, 병약자까지 무차별 연행됐다.

징용자들의 실태는 차별, 위압, 학대 등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우선 현장에 투입되기 전에 기초적인 도구 사용법을 간단히 배운 뒤 나머지는 황민(皇民)사상 철저 등 정신훈련을 받는다. 주거의 경우 기숙사에 단체로 몰아넣은 뒤 도망 방지를 위해 창에는 격자를, 담에는 철망을 설치했다. 또 개도 키우고 사무실에는 일본도, 목도, 엽총까지 놓아 위협했다. 홋카이도의 경우 다코베야(문어방)로 불리는 토굴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도망자, 반항자에게는 경찰, 노무담당자에 의한 학대 및 폭력이 이뤄졌고, 죽음에 이르는 사건도 다반사였다고 모리야는 전했다.

임금도 차별을 받았다. 미숙련을 내세워 노동능력을 일본인의 70%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항만노역, 토목건축, 공장 등에서는 월 30~60엔, 갱내 노동은 60~90엔 정도였다. 그나마 임금을 실제 지급받는 경우란 많지 않았다. 급여일은 도망방지를 목적으로 10엔 안팎만을 현금으로 지불했을 뿐 강제로 저축을 들게 한 뒤 통장은 노무직원이 보관했다.

또 저축이 모아지면 국채, 채권 구입을 강요했다. 외견상 송금을 허용하고 있지만 회사에서 조선의 경찰서를 거쳐 가족에게 건네지게끔 돼 있어 실제 전달 여부도 불투명하다. 강제노동의 계약기간은 대체로 2~3년이었지만 통장을 주지 않거나 여행증명서를 발행하지 않는 등의 수법으로 사실상 계약기간을 멋대로 늘렸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