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역사, 재발 안한다는 근거 있나”
인터뷰-‘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저자 서경식 교수
유대인 학살·식민지배·민주화운동, 정확한 과거사 성찰 필요 … 무관심이 가장 큰 적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 박광현 옮김
창비 / 1만2000원
“한국에는 근거가 없는 낙관주의가 판치고 있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으면서 불행한 과거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나는 묻고 싶다. 그 자신감의 근거는 무엇이냐고.”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펴낸 서경식 성공회대 연구교수가 한국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서 교수는 1951년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나 동경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올해 4월 성공회대 연구교수로 활동하기 위해 고국을 처음으로 찾았다.
유대계 이탈리아인 쁘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당시 참상을 책으로 알렸다. 그는 이탈리아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알려진 문학가이자 지식인이다. 레비는 지옥과 같은 수용소에서 살아남았지만 1987년 이탈리아 토리노 자신의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레비는 목숨을 끊기 1년전 펴낸 ‘익사한 자와 구제된 자’에서 “하나의 민족과 문명을 파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2차대전 이후에도 인류는 전쟁과 학살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레비와 비슷하게 반인륜적인 범죄를 은폐하는 권력과 그에 무관심한 시민들을 목격했다. 식민지 피해자들의 진상규명을 외면하는 일본 정부를 봤고, 두 형은 한국에서 간첩으로 몰려 투옥되기도 했다. 서 교수는 ‘박정희 3선 저지운동을 배후에서 조종한 형제간첩’으로 지목돼 옥고를 치룬 서 승, 서준식씨의 막내 동생이다.
레비와 서경식 모두 식민지와 제국주의, 반인륜 범죄의 피해자이다.
이 책은 살아남은 저자가 비슷한 인생을 살았던 죽은이의 행적을 되짚어가는 기행문이다.
– 레비를 알게 된 계기는.
일본에서 레비의 책 ‘이것이 인간인가’가 발간됐을 당시 형들은 간첩으로 몰려 한국의 감옥에 있었고, 어머니는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때 레비의 책을 읽은 후 지금의 내 상황을 나중에 다른 이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 증인의 의미는.
가령 원자폭탄으로 수십만명이 일본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통계로 설명한다면 피해가 크다는 단순 사실만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참혹함을 재현해 설명하면 원폭의 무서움을 알리고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할 수 있다. 후자가 바로 증인의 역할이다.
– 유대인 학살과 같은 범죄가 재발할 것이라고 보는가.
지금도 전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과거의 사건을 한때 일어났던 일이라고 치부하면 당연히 재발한다. 레비는 이러한 문제 때문에 증인의 역할, 과거사 진상규명이 중요하다고 봤다.
– 독일은 과거 반성에 적극적이지 않나.
내가 생각하는 본질은 다르다. 독일은 나치와 확실한 경계선을 그었다. 책임은 나치에게 있고 우리도 희생자라는 식이다. 다만 도의적으로 잘못했고 보상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잘못을 또 저지르지 않겠다는 진지한 고민은 부족하다. 피해자는 물질적 보상보다 과거에 대한 진심어린 반성을 원한다. 내면에서 반성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레비는 독일의 반성보다 인간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 점에 실망했다.
– 일본은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를 국가 대표가 공식 참배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독일 수상이 히틀러 묘역을 공식 참배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일본의 반성이 독일 수준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일본국민이 신사 참배를 지지하고 무관심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 일본에서 책을 냈을때 반응은.
아쉽지만 거의 반응이 없었다. 일본은 전세계에서 유대인 학살에 대한 연구 활동이 수준급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성과를 토대로 자기자신에게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안네의 일기’와 ‘쉰들러 리스트’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었지만 자기들의 역사와 현실에 결부시키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안네였다면’, ‘쉰들러였다면’ 하는 생각조차 안 하는 것이다.
– 유대인 학살과 식민지 지배를 인간의 문제로 보는가.
레비는 유대인 학살의 경우 보통시민들이 90% 지지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이것은 대중이 무관심할 경우 반인륜적 범죄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은 히틀러를 추종하고 복종, 환호를 보냈다. 국가나 권력의 문제가 아닌 인간성이 붕괴된 과정과 인간의 약점에서부터 분석해야 한다.
– 이 책을 한국에서 낸 이유는.
한국에는 유대인 학살이나 아우슈비츠와 같은 자료가 변변치 않다. 이는 식민지 피해자라는 인식이 국민들에게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단순 지향적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특히 식민지와 군사정권 시절에 대한 과거사를 제대로 규명하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 식민지 시절과 민주화 과정에 물음을 던지는 것인가.
대학생들과 민주화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면 교과서에 나오는 독립운동 보듯 한다. 이것은 한국사회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고리만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이 없다. 성찰이 없다면 유사한 일을 막을 수 없다. 어떻게 민주화를 이뤄냈는가. 과거의 폭압이 다시 오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있는가. 그 확신의 근거는 무엇인가. 한국은 선진사회 건설을 위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해야 한다.
– 한국에서도 과거사 규명에 대한 반발이 많다.
90년대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일본인들도 ‘지난일을 새삼스럽게 왜 꺼내느냐’고 되물어왔다. 오히려 과거일은 버리고 미래 지향적인 일을 논의하자고 한다. 한국과 중국이 과거 문제를 끄집어내면 ‘한 많은 민족’이라는 논리를 세운다. 살기 좋아졌는데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민족성 때문이라는 식이다.
현재 한국내 과거사 문제도 유사하다. ‘친일을 해서 밉다’ ‘벌을 주자’라는 것이 아니다. 친일 행위가 무엇이었고, 왜 그러한 일을 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화해를 하려면 화해의 근거가 필요하다. 참된 화해를 위해 과거에 대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 과거를 제대로 돌아보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
– 누가 이 책을 봐주길 바라는가.
젊은이들, 대학생들이 많이 봐줬으면 한다. 그 때문에 일반인들도 볼 수 있도록 기행문 형식으로 책을 만들었다. 일본의 대학생들은 장기간 경제가 침체되면서 사회에 대해 무관심하다. 특히 사회정의에 대해 이야기하면 시니컬해지고 강의실은 썰렁해진다. 이미 사회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한국 학생들은 열정이 넘친다. 연구교수지만 종종 학생들과 대화를 한다. 학생들의 눈빛이 빛나고 열정이 느껴진다. 한국은 약자에 대한 배려와 공감대가 남아 있다. 나는 한국이 제2의 일본이 되지 않고 선진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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