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했던 백범의 비범한 ‘항일 분노’
나는 이렇게 읽었다/백범일지“나는 목메인 소리로 마지막 작별의 말을 건네었다.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1932년 4월29일 아침,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으로 향하는 윤봉길을 작별하며 백범이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다. 거사를 결행하러가는 그보다 백범이 더 격동되어 있는 듯한 이 장면은 여전히 영상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게 뇌리에 찍혀 있다. 80년대 초 그 시대상에 절망하던 대학분위기를 갓 접한 신입생 때여서 그랬는지, 아직 감성이 많았던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백범일지의 이 대목을 읽으며 갑자기 눈물이 핑돌았다.
지하에서 만납시다! 이보다 더 비장한 말이 있을 수 있을까? 생(生)을 중시함은 두 사람이야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을텐데 조국독립을 위해 의(義)를 취하려 하는 절실함 때문에 죽어서 만나자는 약속도 할 수 있었으니, 여기에서 참으로 “삶은 태산 보다 무겁고 죽음은 깃털 보다 가벼운 것”이 아니었던가.
그 때 이후 백범일지를 정독하는 기회는 차츰 줄어들었다. 아마도 백범이란 인물에 대한 이미지가 80년대 대학가에 유행하던 이념의 스펙트럼에 따라 차츰 굳어졌기 때문인듯 싶기도 하다. 즉, 본의아니게 소위 좌편향에 흘러 ‘우익정치가로서의 백범’만을 머릿 속에 고착화시켜 갔던 게 아닌가?
그런데 새삼 다시 정독해보는 요즘, 그 진솔한 묘사 가운데 가슴을 치는 게 많다. 역시 독서란 읽는 시기에 따라서 받는 느낌이 달라진다는 걸 실감한다.
백범일지는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항일투쟁의 전반적 정황을 이해하게 해주는 역사서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자서전인 만큼 백범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고 그 내면의 고백을 들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한 인간의 좌절과 고단함이 곳곳에 배어난다. 상상하기 힘들지만 백범은 옥살이가 힘들어 자살까지 시도하였고, 또 칠십평생을 회고하는 부분에서 “살려고 산 것이 아니고 살아져서 산 것이며, 죽으려도 죽지 못한 이 몸이 끝내는 죽어져서 죽게 되었도다”라고 한탄하기도 한다.
백범은 신분도 평범했거니와 스스로 백범이라 호(號)하여 범부(凡夫)되기를 자처했다. 다만 그는 옳은 길을 스스로 결단하여 나아갔기에 결국 독립운동의 지도자가 되는 비범함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었던가.
백범의 길은 분노로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이 말은 애국심이란 게 조국을 사랑해야 한다는 그 어떤 당위적으로 주입된 관념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고 평범한 사람도 느낄 수 있는 분노에서 출발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백범은 나라한테서 무슨 커다란 혜택을 받은 바도 없는 상민에 불과하지만 이런 분노는 느낄 줄 알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속으로 삭히고만 마는 분노가 아닌, 정의를 위한 분노를 과감히 터뜨렸다는 점에 평범을 넘어선 그의 비범함이 있다고 본다. 그가 황해도 치하포에서 쓰치다를 죽인 것도, 정의의 분노로부터 촉발된 것이지 명예욕에서 촉발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애국심은 소박한 삶을 향한 꿈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높은 문화의 힘을 누리는 국가를 건설하자는 이상을 제시할 수 있지 않았을까? 또한, 그래서 그 뒤의 해방공간에서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정도냐 사도(邪道)냐는 것이 문제”라는 지사다운 태도를 견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 일제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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