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살개야, 정말 미안하구나
요즘 시중에 회자(膾炙)하는 ‘짖지 않는 개 시리즈’가 있다. 그 이유인즉, 주인이 너무 가난해서, 주인이 도둑놈이라서, 그리고 주인이 매일 짖기 때문에 개가 짖지 않는다고 한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그러나 오랫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살아 온 우리의 순수한 토종개가 있다. 바로 삽살개 생각이 난다. 털이 긴 개라는 의미로 더풀개, 더펄개라고도 불리던 삽살개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선명하게 그려져 있고, 신라시대에는 나라를 걱정하던 왕실과 귀족들이 특별히 보살피며 키웠다. 삽살개의 삽 (揷)은 쫓다, 살(煞)은 나쁜 기운, 액운을 의미하는 것으로, 삽살개는 곧 ‘귀신을 쫓는 개’’액운을 물리치는 개’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신라 왕실이 멸망하면서 민가로 흘러 든 삽살개는 고려, 조선 왕조에 이르기까지 왕실과 일반 백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우리 민족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살아 왔다.
춘향전과 열하일기를 비롯한 고전과 민화, 민요에 수없이 등장하고, 동네마다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수가 많았던 삽살개는 일제의 강점기를 거치며 이 땅에서 갑자기 자취를 감추게 된다.
1931년 만주 사변을 일으킨 일본이 북방으로 진출하는 군인들의 추위를 막아주는 방한용 군수품으로 견피(犬皮)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전국에서 약 50만-100만 마리로 추정되는 삽살개가 조선총독부에 의해 무자비하게 포획, 도살되어 일본군의 외투와 장화 등을 만드는데 사용됐다.
이 과정에서 아끼다 견, 규슈 견, 홋가이도 견, 시코쿠 견 등 일본의 토종 견들과 유사한 외모를 갖고 있던 진돗개는 비교적 화를 면한 반면, 눈망울이 덮일 정도로 길고 부드러운 털이 복실 복실하게 덮여있고 일본 개들과는 생김새가 전혀 다른 조선의 온순한 토종 견 삽살개들은 무참하게 죽어갔다. 해방 이후 전국적으로 살아남은 삽살개는 불과 50마리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 6.25전쟁과 가난을 거치며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고, 이후 밀려 들어 온 외국 산 애완견들 사이에서 삽살개는 그 생김새조차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을 정도로 우리 민족의 기억 속에서 끝없이 사라져 갔다.
조선의 토종 견 삽살개들이 무참하게 학살된 지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는 겨우 2,500마리의 삽살개들이 그 수난의 역사를 기억하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도움과 보살핌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1960년대 초, 경북대학교 하성진 교수팀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삽살개 30여 마리를 수집해 그의 아들 하지홍 교수(경북대) 대에 이르기까지 사재를 털어 대물림 해 온 헌신적인 보살핌과 인공번식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칫 이 땅에서 멸종될 뻔한 위기는 넘긴 것이다.
예로부터 집 안에 풀어 놓고 키워 온 삽살개는 성격이 온순하고 영리할 뿐 아니라, 사람 말도 잘 알아듣는다. 주인과 함께 걸어 갈 때는 주인 얼굴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걸을 정도로 주인에 대한 사랑과 충성심이 강하다. 삽살개는 1992년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천연기념물 368호로 지정됐다. 1998년에는 독도에도 보내져 독도 수비대의 사랑스런 친구이자, 독도 지킴이로도 활약하고 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외국 언론사 기자가 “한국의 천연기념물이자 전설적인 개 (Legendary Dog of Korea) 삽살개에 대해 취재하고 싶다”고 하더니, 며칠 후 다시 연락이 왔다. “주변의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삽살개에 대해 잘 모르던데 어떻게 된 일이냐? 삽살개가 천 년 동안 한 민족과 함께 살아온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이 맞긴 맞는거냐?”
그렇다. 우리가 삽살개를 잊고 있었다. 해방의 기쁨, 6.25 전쟁, 가난 퇴치, 경제 발전, 국가 경쟁력 강화, 세계화의 숨 가쁜 질주 속에서 천 년을 함께 살아 온 삽살개를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서 무엇을 먹고 사은 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올 가을에는 온순하고, 사랑스럽고, 용맹하고, 강인하고, 인내심 많은 우리의 삽살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라.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삽살개에 관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어 보고, 2006년 병술년 개띠 해가 가기 전에 우리의 마음 속에 귀여운 삽살개 한 마리씩을 키워보자.
– 한국광고주협회 상근부회장/언론학 박사


![img-top-introduce[1]](/wp-content/uploads/2016/02/img-top-news1.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