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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흔적 없는 재판, 벌금 내지 않고 구속 각오”-오마이뉴스(0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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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흔적 없는 재판, 벌금 내지 않고 구속 각오” 
 



           ▲ 박노정 진주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가 2005년 5월 의기사에서 일명 ‘논개영정’을 뜯
           어낸 뒤 순의단에 세워놓고 고유문을 낭독하고 있다.  
           ⓒ2006 윤성효
 


친일화가가 그렸고 고증이 엉터리였던 일명 ‘논개영정’을 뜯어냈다가 주거침입 등으로 기소되어 항소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던 시민단체 대표들이 재판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벌금을 납부하지 않고 노역장에 유치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50여개 단체로 구성된 ‘독도수호 진주시민운동본부’는 2일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진주시민운동본부는 2005년 5월 10일 진주성 안 의기사에 들어가 유리를 깬 뒤, 친일화가 김은호가 그린 엉터리 영정인 <미인도 논개>(복사본·일명 논개영정)를 뜯어내 주거침입과 공용물손상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지난 1월 1심에서 박노정(진주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하정우(민주노동당 진주시당 위원장)·유재수(민주노동당 중앙위원)씨는 각각 벌금 500만원, 정유근(당시 공무원노조 진주지부장)씨는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지난 28일 열린 항소심에서 4명 모두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창원지법 제4형사부 강구욱 부장판사는 “논개영정을 뜯어낸 것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재판부와 관련이 없고, 사법적 판단만 한다”면서 이같이 선고했던 것. 박노정씨 등 4명은 즉각 대법원 상고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2일 2심 변론을 맡았던 손명숙 변호사는 상고 절차를 밟기로 했다.

만약 대법원에서도 벌금형이 확정되어 이들이 벌금을 납부하지 않을 경우, 이들은 사법기관으로부터 벌금 납부 독촉을 받게 되고, 그래도 납부하지 않을 경우 수배와 긴급체포 등의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체포된 뒤에서 벌금을 납부하지 않을 경우 노역장에 유치되는데, 이들은 3~5만원씩 일당이 계산되어 그 기간(100일 안팎)이 지난 뒤 나오게 된다.

다음은 대법원 상고에 맞춰 박노정(56) 진주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 대법원 상고 절차는?
“9월 28일 항소심 선고를 받고 바로 상고하기로 했으니까, 변호사가 절차를 밟고 있을 것이다.”

– 항소심 재판부가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판사가 논개영정을 뜯어낸 것은 역사성과 무관하다고 했다. 1심 때는 탄원서도 있었고, ‘표준논개영정 제작’ 추진 등의 절차가 진행 중이었다. 2심 때는 진주시청 담당계장이 나와 증언까지 섰고, 그래서 좋은 판결이 내려지는 줄 여겼다. 그런데 결과는 딴판이었다.

재판부는 과정도 필요 없다고 여긴 것 같다. 시민단체에서는 지난 10년 넘게 정상적인 방법으로, 잘못된 영정을 뜯어내라고 요구했지만 자치단체는 전혀 들어주지 않았다. 지역 현안을 놓고 시민단체는 10년 넘게 줄기차게 요구하고 기다렸다. 10년 전에 그같은 주장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엉터리 영정은 진주성 의기사에 걸려 있을 것이고, 아무런 변화가 없었을 것이다. 10년 넘게 요구하고 영정을 뜯어낸 것에 대해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법원이 어떤 판결을 할 때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게 판단해야 한다. 다른 사건과 이번 사건은 다르다. 그런데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 정유근 공무원노조 경남본부장에 대해서는 더 무거운 선고가 내려졌는데?
“검찰이나 법원이나 억지로 죄인을 만들려고 했다. 당시 공무원노조 진주지부장은 그 일을 하는데 간접적으로 참여했고, 그 날도 잠시 건네준 역할 밖에 없었다. 1심에서 벌금 200만원이었는데 2심에서 500만원이 된 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보이면, 마치 범죄자를 만들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 대법원에서 벌금형이 확정되면 벌금을 낼 것인지?
“4명 모두 가난하기도 하지만, 돈으로 벌금을 내겠다는 생각은 모두 하고 있지 않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벌금을 내야 한단 말이냐.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재판을 해야 하고, 적어도 재판부가 고민한 흔적은 보여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최소한 ‘역사성을 인정하더라도 실정법을 어겼다’는 말은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벌금을 납부하지 않는 것에 대해 모두 합의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모두 구속까지 되겠다는 각오다. 일단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겠다.”

– 아무리 정당한 주장이라도 물리력을 동원해서 강제로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인가?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을 알고 있으면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그 그림은 문화재도 아니고, 아무런 가치가 없는 엉터리였다. 그리고 친일이라는 요소가 들어 앉아 있었다. 한마디로 국민을 기만한 그림이다. 지역에서도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그 날도 단지 유리만 깼을 뿐이지, 영정을 뜯어내 임진대첩계사순의단에 고하고, 곧바로 진주시장을 만나자고 제안한 뒤, 그 영정을 진주시에 넘겨주었다. 당시 생각 같아서는 영정을 바로 불태워 버리고 싶었고, 남강에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의기사를 파괴할 목적은 아니었고,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기에 주거침입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논개 입장에서 생각하자는 것이다. 일찍이 한용운 선사는 ‘논개여 미안하다’고 한 적이 있다. 의기사 안에 있던 엉터리 그림을 생각하면 그 말이 정말 온 몸으로 공감하게 되었다. 이번 일을 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들까지 정말 논개의 입장에서 진정으로 고민하기를 바란다. 1심과 2심 재판부 또한 논개의 입장에서 판단하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하급심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대법원만큼은 정말 논개의 입장에서 살펴봐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논개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가 10년 넘게 지역현안으로 논란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엉터리 영정 해결하는데 10년 넘게 걸려 
 
 
진주성 의기사 안에 있던 ‘논개영정’을 뜯어내야 한다는 여론은 1993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YS정권은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을 벌였는데, ‘논개영정’이 가짜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당시 <진주신문>에서 고증이 잘못된 데다 친일화가가 그렸다는 사실을 밝혀내 보도하면서 관심이 높았다.

김은호는 1960년대초 ‘미인도 논개’를 그렸고, 진주시는 이를 의기사에 봉안했다. 그런데 이 그림은 1980년대 도난 당했다가 다시 찾았는데, 진주시는 진짜 그림은 별도로 보관해 두고 ‘미인도 논개’ 복사본을 유리 안에 넣어 봉안해 두었다.

김은호는 대표적인 친일화가였다. 그리고 ‘미인도 논개’는 고증이 엉터리였다. 가령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당시 조선 여인의 복식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얹은머리’였는데 김은호는 땋아서 올린 머리모양을 그렸고, 저고리 길이도 당시에는 허리까지 내려 왔지만 김은호는 가슴까지 올려 그렸다.

<진주신문> 보도 후 지역에서는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이 참여해 ‘논개영정 폐출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대책위는 문화관광부와 경남도 등에 진정서를 냈지만, ‘미인도 논개’는 문화재도 아니기에 진주시가 처리 여부의 결정권을 가졌던 것.

지역에서는 경상대․진주교대 교수 150여명을 비롯해 교사들이 ‘논개영정 폐출’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이 문제는 진주시의회에서도 현안으로 다뤄, 정지호 손태기 김은하 전 의원 등은 폐출을 주장했지만, 1997년 열린 간담회 때 45명 시의원 가운데 24명이 그대로 두자고 결정해버렸다.

엉터리 ‘논개영정’을 뜯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았지만, 지역에서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5년 5월 5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독도수호 진주시민운동본부’는 의기사에 들어가 그림을 뜯어냈다.

그 뒤 논개의 출생지인 전북 장수와 순국지인 경남 진주시가 공동으로 ‘논개표준영정 공모’를 벌였다. 시민단체에서 잘못된 그림을 뜯어 낸 게 계기가 되어 올바른 정신이 깃든 그림을 모실 수 있게 된 것. 지난 7월 13일 새 논개영정을 그릴 작가가 선정되어 제작에 들어갔으며, 2007년 새 영정이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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