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에요”
[인터뷰①] 재일교포 3세가 경험한 한국 유학생활, 그리고 일본
최근 일본 자민당 새 총재에 아베 신조 전 관방장관이 당선되면서 일본 국민은 물론 한국에서도 앞으로 대일관계에 관심이 높다. 이 두 나라가 단순히 지리적으로 가까워서뿐만이 아니라, 과거 역사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었으며 미래에도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이웃나라’이기 때문이다.
한일관계는 최근 야스쿠니·독도 등을 둘러싼 외교마찰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일본 정치에 대한
한국의 관심도 이것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일관계는 야스쿠니·독도가 전부가 아니다.
기자는 일본 속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한국국적이든 조선적이든)들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진정한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한 과제들을 3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찾아보고자 한다. 우리 민족, 특히 재일 교포에 관심을 둔 것은 그들의 삶 자체가 우리의 모습, 일본의 모습, 그리고 한일관계를 동시에 비춰주는 거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 주>
▲ 한국 유학생활 중 유쾌하지 않았던 경험을 들려주는 신영희씨. ⓒ 허재철
신영희씨는 일본 교토에 살고 있는 재일교포 3세대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이라는 말에서 눈치를 챘겠지만, 전에는 한국인이 아니었다. 7년 전까지만 해도 신씨는 ‘조선인’으로 불리고 있었다.
일본강점기 가난한 조국을 등지고 먹고 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신씨의 할아버지. 그 때부터 할아버지·할머니의 뒤를 이어, 아버지·어머니, 그리고 신씨 자신도 줄곧 이 곳 교토에서 태어나 살고 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셨던 ‘조선’적을 7년 전까지 고집세게 유지하고 있었다.
“일본에 사는 재일교포에는 크게 2개의 국적이 있어요. ‘한국’국적과 ‘조선’적. 그런데 이 조선적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조선’적은 사실 국적이 아니에요. 특수 신분이죠. 식민지시대에 조선에서 일본에 넘어온 사람들만이 갖고 있는 그 ‘조선’적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조선’적이 지금의 ‘북한’ 국적으로 알고 있기도 하죠. 그런데 그건 틀린 생각이에요. 북한과 일본은 정식 국교가 없기 때문에 북한국적은 없는 거예요.”
이어 신씨는 그 ‘조선’적을 갖고 있음으로 해서 겪었던 고통을 토로했다.
“‘조선’적으로는 비자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외국에도 못 나가요. 또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분단 이전의 조국이 자신의 조국이라고 생각하여 그 ‘조선’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일본에서 북한에 대한 나쁜 이미지 때문에 ‘조센징(조선인)’이라고 말하면 차별받거나 멸시당하기도 하죠.”
“한국에서는 한국인이 아니었고, 일본에서도 일본인이 아니에요”
신씨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었다. 재일교포 3세인데도 다른 3세들과 달리 한국어가 유창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7년 전에 ‘조선’적에서 ‘한국’국적으로 바꿨다고 했는데, 한국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 바꾼 거예요. 그 때 부모님들이 무척이나 고민을 많이 하셨어요. 저를 위해서 그렇게 오랫동안 지켜왔던 ‘조선’적을 바꿀 것이냐를 두고 말이죠. 정말 죄송했죠.”
1999년 신씨는 고생 끝에 조선적에서 한국국적으로 바꾼 뒤 한국으로 유학을 가서 고려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컨설턴팅 회사에서 2년간 사회경험도 했다.
그러나 고생 끝에 간 한국에서의 유학생활이 신씨에게는 즐거운 추억만은 아니었다.
“2학년 편입으로 들어가서 그런지 한국 학생들이랑 친해지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리고 재일교포라고 하면 ‘부자’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았어요. 부자라서 ‘경험삼아 유학을 왔다’라고 생각하나 봐요. 그래서 그런지 선이 그어지는 느낌이 확 들더라고요.”
하지만 이는 유학생으로서의 사소한 고생에 불과했다. 더 중요하면서도 신씨 자신에게 마음에 상처로 남는 경험들이 더 있었다.
“저는 재일교포 3세가 자기 나라인 조국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왔다고 하면 많은 칭찬을 받을 줄 알았어요. 그러나 유학생활 중 그런 칭찬은 받아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큰 피해를 받았죠. 한국에서는 일본으로 귀화해서 ‘일본’국적으로 한국에 유학을 온 교포학생보다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한국으로 유학온 교포학생이 더 대우를 못 받는 것 같아요. 저도 경험했죠.
기숙사를 배정받을 때의 일인데, 똑같이 살고 있는 곳은 일본인데 ‘일본’ 국적의 교포유학생은 외국인이라 혜택을 받는데, 저는 ‘한국인’이라 혜택을 못 받았어요. 억울했죠. 차라리 ‘일본’으로 귀화하는 게 나은 게 아닌가 생각했죠. 은행에서의 경험도 있어요. 외국인과 교포의 주민번호가 다른 것 같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직원들이 저를 부를 때 ‘외국인 손님’이라고 불렀어요. 기분이 무척 나빴어요. 주의를 줬는데도 똑같았어요.”
“그렇게 먹고 남기는 게 많으면서 왜 북한에 안 나눠주죠?”
이야기는 슬슬 정치적인 이야기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던 당시는 시험 기간이었거든요. 역사적이면서도 세계적인 큰 사건이잖아요. 그런데 한국학생들은 별 관심이 없더라고요. 공부만 했어요. 다들 유학 갈 생각만 하는 것 같고…. 그리고 한국에는 먹을 게 넘쳐나잖아요. 그렇게 먹고 남기는 것들이 많은데 왜 북한에 나눠줄 생각은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신씨의 이러한 외침은 다른 사람들이 갖기 어려운 소중한 경험에서 나온 생각이다. 신씨는 일본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민족학교’에서 나왔다. 그래서 교포 3세인데도 우리 민족의 것에 대해 많이 배우고 관심을 두고 있었다.
‘조선’적을 갖고 있던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수학여행을 북한으로 다녀왔다. 평양과 신의주, 백두산. 그 당시 북한에 대한 이미지는 생활이 넉넉하지 못해 보였지만, 사람들이 참 괜찮았다는 것.
한국에서의 유학생활 동안 느낀 것에 대해 신씨는 명료하게 대답했다.
“한국에 있는 동안 저는 한국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일본에 돌아와서는 일본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모르겠어요….”
29살인 신영희씨. 그러나 아직도 선거를 해본 적이 없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선거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지 정당은 확실히 갖고 있었다. 만약 일본에서 선거권이 주어진다면 ‘사회당’을 뽑을 거라고 한다.
그는 아직 젊은 나이이지만 재일교포이기 때문에 유학생 신분으로서 한국 경험, 그리고 일본에서의 일상생활에서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한일관계가 말해주듯 재일교포, 조선적, 한국국적, 민족학교 졸업, 한국유학 등 신씨를 수식하는 말들 속에서 우리가 풀어야 할 많은 과제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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