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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를 위한 ‘변명’이냐, ‘옹호’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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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범 교수


 


‘친일파를 위한 변명’이 항일투사에 대한 모독과 민족반역의 옹호가 돼


2004년 친일진상규명법 제정을 앞두고 국회에서 공술인발표의 절차를 거칠 때의 일이다. 당시 이 법안을 반대하는 측의 의견도 참조한다는 주최측의 배려로 ‘친일파를 위한 변명’이란 책을 쓴 김완섭을 공술인으로 지명, 발표케 했다. 그런데 그의 공술문을 자세히 보니 김구선생을 모독하는 등 도무지 이것이 조선총독부 주최모임인지 , 대한민국 국회가 주관하는 모임인지 모를 정도로 이상한 꼴이 되고 말았다. 결국 독립선열유족측 참관자의 항의소동과 참석한 국회의원 자신이 이의까지 제기되는 해프닝으로서 끝났다.

나에게는 그 일의 충격이 가시기 전에 또 한번의 충격을 받는 사건이 생겼다. 독립운동관계 잡지에서 나의 공술요지문을 잡지에 게재하겠다고 해서 승락했는데, 얼마 후 박정희 관계부분을 삭제하자는 이상한 제안을 해 왔다. 그래서 어째서 그러냐고 하니까 박정희 지지자 쪽의 반발이랄까, 잡지 판매 유통에 문제가 있어서 그러니 양해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즉답으로 게재를 거부한다고 해서 그렇게 결말이 났다. 이것이 우리의 친일파 문제의 현실정의 일부이기도 하다.

지금 친일파는 변명이 아니라 옹호를 하는 친일세력이 호통을 치고 있다. 1948년의 반민법이 좌초된 이후 친일세력이 이승만을 거쳐서 박정희와 그후 신군부에 이르기 까지 탄탄대로를 걸어오면서 실세로 군림해 오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고 있다. 개혁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친일파 문제는 원점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친일진상규명법이 어떻게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는지는 일찍부터 위험신호등이 깜박거리고 있다.


역사를 위한 투쟁은 오늘의 문제고 미래를 위한 투쟁


친일파는 아직까지 그 행동을 통해 사과, 사죄한 적이 없다. 그러면서 미군정이래 반공주의로 면죄부를 획득하고선, 매카시즘으로 무장하고 독재권력에 편승, 기생해 오면서 한국의 주류의 실세가 되어 왔다. 그들의 사회, 정치, 경제, 문화면에서의 기득권은 아직까지도 거의 불가침의 성역으로 탄탄하게 고수되어 온 턱이다. 그래서 많은 지식인은 그들 실세의 눈치를 보고 있다. 그들을 옹호 대변하는 명망가(?)는 사회 각 곳에 도사리고 있고, 엄청난 위세를 떨쳐 온 수구언론은 아직도 힘을 쓰고 있다. 그들이 장악한 재산과 사회적 지위의 배경을 믿고 그들은 친일파 반대자에 대해 가차 없이 칼을 휘두른다.

우리에게 친일파문제는 2005년 1월 6일자 <<뉴욕 타암즈>>가 지적한 말에 따르면 “전환기에 있는 한국에서 역사를 위한 투쟁은 미래를 위한 투쟁”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친일파 청산의 문제는 오늘의 문제이다.

친일파의 문제는 1905년부터 1945년 사이 일제식민지배기간에 반민족행위의 문제만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1) 친일파는 그 행적에 대해 사죄하고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한 적이 없다. (2) 오히려 독재권력의 주류가 되어 오면서 반민족적이고 반민주적인 행위로서 무수한 가해행위를 해오고 있다. (3) 뿐만 아니라 지금에 이르러선 정세변화에 따라서 자기들의 입지가 불안해지자, 일본 극우세력과 박정희와 신군부시절보다도 더욱 공공연히 국제연대를 맺고서 일본군국주의와 국수주의 세력의 전쟁국가 노선 추진파의 한반도 긴장상태 조성을 거들고 있다.














관련기사


월간조선, 친일명단 발표 앞두고 흠집 내기 (참말로, 2005.08.22)


 친일파 명단발표에 대한 친일파의 반발 논거 – 그들의 억지구실


독립운동단체나 민족문제연구소 같은 기관에서 친일파 명단을 발표해 오지만, 아직도 친일파의 눈치를 보는 지식인들은 딴 소리를 한다. 친일실세의 비위를 건드려서 괘씸죄에 걸리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친일파 논리에 자기도 모르게 오염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친일파 명단발표에 대한 거부 반발의 논거를 정리해 본다.


 (1) 일제치하 생활자 전체 책임으로 돌리는 궤변 : ‘물귀신 작전’의 술책 — 일본의 예가 참고 되겠다. 일본제국주의가 패전하자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왕과 지배층이 이를 모면, 회피하기 위해 패전은 국민 모두가 잘못한 때문이란 ‘일억총국민 참회론(一億總國民 懺悔論)’이란 궤변을 내세워 위기돌파에 성공했었다. 우리 주변의 친일파나 그 아류도 “일제시절에 세금 낸 것도 친일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어디 있냐?” 하는 식으로 들이대는, 그럴듯한 말로 친일을 변명한다. 그러나 책임져야 할 처지와 민족에 대한 가해정도와 그 고의성 및 당시 사회적 지위에 따른 책임문제가 있다.

(2) 동정(同情)론 – 인정(人情)론 — 친일옹호론자는 말하길, “지금에 와서 이미 지난 과거사를 가혹하게 따질 것이 뭐냐? 그때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잘 봐주는 것이 나쁠 것이 없지 않는가?” 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교인으로서 관용과 용서를 하는 자리에서 이 문제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도의적 및 법적 정의의 문제란 잣대를 버리면 안 된다. 그래선 심판부재의 무책임사회의 난장판이 연속될 뿐이다.

(3) ‘친일’용어 시비와 말초적인 것 물어뜯기 — “친일”이나 “친일파”란 범주가 애매하고 부정확하다는 등 용어를 가지고 논의를 장황하게 전개한다. 지엽(枝葉)적인 것을 물고 늘어져서 본 줄기를 얼버무리는 수법이다. 심지어 정의(正義)란 말이 말로선 그럴듯하나 사람마다 시대마다 다르다는 등 정의 자체를 추방하는 논리로 비약하는 친일파 편의 궤변수법이다.

(4) 선의(善意)의 피해자(被害者) 발생론 — 한꺼번에 명단을 만들다 보면 선의의 피해자가 생겨나고 숨은 공로자에게 누를 끼치게 된다고 한다. 60년이 지나도록 무엇을 했길래 친일 행적에 대해 변명할 말과 그에 따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지내 왔냐? 매카시즘 때문에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로 낙인찍히거나 찍힐 위험을 안고산 사람은 할말도 못했다고 하지만, 친일파세상에서 친일파가 왜 가만히 엎드려 있었냐? 오히려 일부는 건국공로자로 문서위조까지 한 것이 있다.

(5) 상생(相生)과 화해(和解)의 억지 — 해방전에는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는 데 한몫하고, 해방후에는 민주인사를 말살하는데 무자비한 몫을 하여 오면서 시세가 불리하게 돌아가니까 ‘상생‘하자고 한다. 상생 안하고 매카시즘의 칼춤을 춘 놈은 누구인가?

화해하자고 하는데 언제 용서를 빌고 참회, 사죄한 적이 있냐? 화해를 하려고 해도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화해인지 모르겠다. 결국은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은 안 된다는 것 아닌가?

심지어 북한 묘역에는 이광수 묘도 안장 안치되어 있는데 우리는 왜 그러냐고 한다. 말 한번 잘했다. 북한에서 한 것은 좋은 것도 잘된 것으로 인정하자면 빨갱이 이적 표현이라고 징역 보내던 입에서 무슨 말인가?  자기에게 유리하면 북한 것 일부를 둘러대고 남에게는 입도 뻥긋 못하게 하는 심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친일파 선정기준은 이미 임정‘건국강령’(1941)과 1948년 반민법에 정한 것

친일파 선정기준이 애매하거나 가혹한 듯 떠들어 댄다. 친일파가 친일파 징벌은 소급처벌이니 법치주의 위반의 법적 안정성 저해니 하던 것에서 다시 자구 표현과 해석의 논증으로까지 끌고 들어간다. 그런데 자세히 알아보면 친일인명수록 선정기준은 공지의 사실로 인정돼 온 것을 바탕으로 수백번의 심의회를 통해 검증해 오고 있다. 앞으로도 할 것이다. 그것을 두고 시비해서 명단발표를 흠집 낼 일은 아니다.

문제는 역사청산을 하는 한 시대의 획을 긋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까지 미루어 온 역사문제를 다시 미결의 숙제로 한다면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 <참말로, 2005.08.22>



*글을 쓴 한상범 동국대 명예교수는 지난 2002년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하여 최종길 교수 살해 사건과 비전향장기수 옥사 사건의 의문사 인정 등을 통해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 과거청산에 기여한 분입니다. 쓴 책으로는 <사상을 벌주는 나라>, <인권-민중의 자유와 권리->, <한자숭배 나라 망친다>, <화 있을진저, 너희들 법률가여!>, <금서, 세상을 바꾼 책>, <일제잔재 청산의 법이론>, <살아있는 우리 헌법 이야기>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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