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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현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 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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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일제강점기 인명록Ⅰ-진주지역 관공리·유력자』의 저자
김경현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이 경향신문 2005년 3월 5일자 보도와
관련하여 사자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서울지검에 피소됐다. 고소인은 장지연의 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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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5일자 경향신문 기사


    장지연 ‘일왕찬양’ 漢詩 게재
     입력: 2005년 03월 04일 18: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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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을사조약 체결 당시 황성신문에 “아아 분하도다! 우리 2천만, 타국인의 노예가 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라는 내용의 명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발표해 투옥까지 됐던 위암 장지연(韋庵 張志淵)이 경남일보 주필 시절 장기간에 걸쳐 친일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민족문제연구소 김경현 연구원은 4일 “장지연은 강점 이듬해인 1911년 경남일보 11월2일자 1면에 일본왕 메이지(明治)의 생일인 천장절을 축하하는 한시와 일장기를 싣는 등 앞장서서 일제를 찬양하는 기사를 썼다”고 주장했다. 그는 증거로 경남일보 영인판을 제시했다.

경남일보에 게재된 한시는 메이지 일왕의 ‘성수무강(聖壽無疆)’을 기원하는 내용으로 일왕을 태양으로, 일제를 동양의 중심으로 각각 묘사했다.

지금까지 학계에선 위암이 경남일보 폐간 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실었던 기고를 두고 부분적으로 친일행적 논란을 제기해왔으나, 이처럼 장기간에 걸쳐 명백한 친일행적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중·고교 국사교과서에까지 항일 언론인, 우국지사로 묘사된 장지연에 대한 재평가를 둘러싸고 학계 등에서 큰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김연구원은 “당시 신문들이 기명기사를 내지 않는 관례 때문에 장지연이 ‘성수무강’ 한시를 직접 지었다는 증거는 없으나 경남일보는 그가 주필로 있던 언론사이며 문장의 수려함을 고려해 보면 장지연이 기재한 것이 틀림없다”고 설명했다. 영남대가 경남일보 영인판을 분석한 결과 장지연은 1909년 10월 창간된 경남일보 초대 주필이 된 뒤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한 1913년 3월까지 4년 가까이 이 신문의 주필로 활약했다.

그는 또 “경남일보는 일왕 찬양시를 게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천장절 당일 휴간까지 하면서 경남 진주 수정봉 정상에서 1,000개의 등화를 봉장한 가운데 축제를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김연구원은 경남일보는 한일합방 직후인 1910년 10월11일자에 일제 강압에 의해 국권이 찬탈당한 것이 억울해 음독자살한 매천 황현의 ‘절명시’를 게재했다가 정간된 뒤 10일 만에 복간되면서 신문 논조가 친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항일 언론인’ 장지연(62년 대한민국건국훈장 국민장)을 지난해 1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그러나 위암의 친일 반민족 행위 전력이 확인될 경우 국가유공자 서훈은 박탈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보훈처는 친일전력이 드러나는 국가유공자는 예우대상에서 배제한다고 지난 3일 밝힌 바 있다.

〈심희정기자 hee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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