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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의 본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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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제연구소


 


친일파인 김연수의 호를 딴 전주종합경기장의 현판이 철거됐다. [화보] 수당문 현판 철거 현장 사진 보기


 



 


지난 19일 ‘역사바로세우기, 문화정체성 확립을 위한 친일잔재 청산 선포식’에서 시민단체와 전주시가 반민특위 검거대상 제4호인 대표적 친일파 김연수의 호를 딴 전주종합경기장의 현판을 떼어냈다.

김연수는 인촌 김성수의 동생으로 중추원 참의를 지내고 국민총력조선연맹 후생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학병을 권유했던 사람이다.

현판은 1963년 전주종합경기장 건설당시 많은 기부금을 내어 그 기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친일잔재청산 선포식(전주, 0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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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특위에 연행되어 가는 김연수(가운데)>


 


현판철거는 친일잔재청산을위한시민연대에서 지난해 전주시에 요청했고 전주시가 올해 받아들이면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친일잔재청산을위한시민연대는 이후에 고창의 서정주 기념관폐쇄, 군산의 친일문인 채만식을 기념하는 모든 행사의 중단, 전주 박기순의 공적비와 남원 이용묵의 기적비 제거, 친일화가가 그린 광한루의 성춘향 영정과 장수의 논개 영정까지 제거할 계획으로 있으며 이는 지자체의 적극적인 협조없이는 어려운 사업들이다. 그러한 면에서 전주시가 적극적으로 친일청산에 동참했다는 점이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김완주 전주시장은 “민족이 당한 치욕과 고통을 생각할 때 민족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는 친일청산이 꼭 필요하다”며 “광복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친일잔재를 청산한 예가 없었는데 전주시가 시민단체와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상호 합의하에 친일잔재를 철거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으며 앞으로 전국 지자체의 친일청산운동이 불길처럼 퍼져가길 기대 한다”고 밝혔다.


친일파 박정희 글씨의 광화문 현판과 충의사 현판으로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 특히 충의사 현판을 뗀 양수철 씨가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은 시점에서 철거 된다는 점에서 친일파 기념사업 중단과 친일잔재 청산에 눈치를 보며 미적거리고 있는 타 지자체와 우리사회에 주는 파장이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연수(1896~1979)


고부에서 둘째로 태어났고 그의 집안은 개항부터 한일합병까지의 사이에 고부지방의 대지주였다. 김연수는 1921년 교토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뒤 1922년 경성직뉴 전무와 경성방직의 상무 겸 지배인으로 사업에 발을 들여놓는다. 1924년 이후 김성수는 교육과 문화사업, 김연수는 기업경영으로 역할을 나누면서 경성방직 ‘신화’가 만들어졌다.

1935년 김연수가 사장이 되면서 경성방직은 식산은행과의 돈독한 관계를 바탕으로 군수품 사업에 참가해 놀라운 발전을 하게 된다. 김연수는 일제의 만주침략과 함께 만주에 진출해서 대규모 농장을 설립했다.


그는 1937년 경기도 애국기 헌납 기성회 발족,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에 이사로 참여하고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 상무이사, 1943년 전쟁과 징용을 찬양하는 글을 발표, 1944년 학병참여 권유 활동, 1945년 조선국민의용대 고문 등으로 친일활동에 가담한다, 더구나 그는 자본가로서 국방헌금 또는 전시채권 매입을 통해 일제의 전쟁 정책에 적극 호응하기도 한다.

그가 경성방직과 방계회사의 이름으로 헌금한 총액은 80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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