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사진 한 장으로 돌아온 독립운동가 강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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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회원마당]

사진 한 장으로 돌아온 독립운동가 강상호

임승관 전남동부지역위원회 위원장

광복절을 맞아 순천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와 친일인사의 행적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발간했다. 같은 시대, 같은 지역을 살아가면서도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이들의 삶을 함께 살펴보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처음 강상호 선생을 만났다.

강상호 선생은 1919년 2월 6일 순천에서 태어났다. 순천 매산학교와 고창중학교를 거쳐 1940년 일본 요코하마전문학교(현 가나가와대학)에 진학했다. 일본 유학 중에는 주오대학의 배종윤, 릿쿄대학의 원용학 등 조선인 유학생들과 교류하며 창씨개명과 한국어 말살정책을 비판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1941년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풀려났지만 다시 후배들을 규합해 활동했고, 1944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선생은 광복을 불과 석 달 앞둔 1945년 5월 11일, 혹독한 고문 끝에 스물여섯의 나이로 옥중에서 순국했다.

강상호 선생의 공적을 살펴보면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국가의 공훈기록에는 그의 삶과 독립운동이 남아 있는데 정작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스물여섯 살에 일본 감옥에서 생을 마친 이 청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사진 한 장이라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그렇게 시작됐다.

선생이 다녔던 가나가와대학에 학적자료와 졸업앨범의 존재 여부를 문의하고, 대학 자료편찬 부서와 연락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인연도 만났다. 강상호 선생의 사연을 알게 된 일본인 다섯 분이 뜻을 모아 작은 모임을 꾸리고 자료 찾기에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한국어가 가능한 분은 대학과의 연락과 일본어 자료 확인을 돕고 있으며, 앞으로 일본을 방문하게 되면 통역도 맡아주시기로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숨진 조선 청년의 흔적을 80여 년이 지난 오늘 일본 사람들이 함께 찾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 있게 다가왔다. 과거를 기억하고 잊힌 사람의 흔적을 되찾는 일은 어느 한쪽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그러던 중 시선을 국내로 돌렸다. 강상호 선생은 일본으로 건너가기 직전인 1940년 고창중학교를 졸업했다. 학교와 관계기관에 문의하고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했다. 수 차례 거부와 확인을 거친 끝에 마침내 1940년 학적자료와 함께 강상호 선생의 졸업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사진 속에는 기록으로만 알고 있던 ‘독립유공자 강상호’가 아니라 일본 유학을 앞둔 한 청년이 있었다. 몇 해 뒤 두 번이나 일제 경찰에 체포되고, 끝내 스물여섯의 나이로 감옥에서 생을 마치게 될 운명을 아직은 알지 못했을 젊은 얼굴이었다. 사진 한 장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서 속 이름으로만 남아 있던 한 사람이 비로소 한 청년의 삶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이번에 찾은 사진이 강상호 선생을 찾는 작업의 끝은 아니다. 아직 일본에는 요코하마전문학교 재학 당시의 학적자료와 졸업앨범, 두 차례 체포와 재판 기록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함께 활동했던 배종윤과 원용학 등 동료들의 흔적도 더 살펴보고 싶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한 사람의 선택이다. 순천에서 태어난 청년은 왜 고창으로 갔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어떤 사람들을 만났을까. 그리고 한 차례 체포와 옥고를 겪고도 왜 다시 독립운동의 길을 선택했을까. 한 번 감옥을 경험한 뒤의 두 번째 선택에는 첫 번째보다 더 많은 두려움과 고뇌가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대가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사진 속 강상호 선생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질문을 하나씩 다시 시작해 보려 한다. 우리의 역사는 어쩌면 그렇게, 잊힌 한 사람의 이름에 다시 얼굴을 찾아주는 일에서부터 살아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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