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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로 쓴 거짓말이
피로 쓴 사실을 감출 수는 없다”
『한국 현대 필화사-필화의 문학 사회사』
필화, 그 탄압의 역사를 다루다
『한국 현대 필화사』는 1945년 8·15 이후부터 바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80년에 걸쳐 일어났던 필화의 전모를 탐구대상으로 삼는다. 여기서 ‘필화’란 글로 인한 탄압(筆禍)을 넘어 넓은 의미의 개념으로 학문과 문화예술은 물론이고, 정치와 종교, 언론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글과 모든 형태의 발언(舌禍), 행위와 활동 전반을 두루 포함한다.
이 책이 다루는 필화의 범주는 ① 지성과 사상사의 조감도, ② 민족 운동사의 독도법, ③ 정치 사회사 전반의 거울이란 쟁점을 통섭한다. 따라서 그 시대의 역사적인 흐름을 쟁점별로 부각시켜 주기에 독자들에게는 그 현장을 답사하는 생동감과 감회를 전해줄 것이다.
예를 들면 ①에 해당하는 항목으로는 8·15 직후 죄우익의 치열한 사상전의 현장을 다룬 「미군정 3년 개관」, 「조선정판사 위폐사건과 좌익지 탄압」, 「중도파 지식인 오기영의 좌절」, 「박태준과 박치우 두 지식인의 비극」, 「광야에서 생각하는 백성 외친 선지자 함석헌」 같은 항목이 있다.
②에 해당하는 글로는 분단민족 운동사의 두 과제인 민주화와 통일을 다뤘다가 필화를 당했던 「만담가 신불출의 설화」, 「여순항쟁과 가수 남인수의 ‘여수야화’」, 「혀와 붓을 대포로 만든 김창숙 옹」, 「가수 계수남과 시인 노천명」, 「연옥의 한 가운데 떨어진 지식인 군상」 등의 파란만장한 삶을 만날 수 있다.
③에 해당하는 글들은 너무나 풍성하다. 「이승만 집권 초기」, 「이승만의 정치 이데올로기와 문화정책」, 「검열제도의 강화와 국민보도연맹」, 「전쟁과 권력, 그리고 부패」, 「간첩으로 몰린 시인 한하운」, 「‘자유부인’과 간통 쌍벌죄」, 「조봉암, 냉전체제와 진보정치의 역학구도」, 「강산도 눈물겨운 독재체제」, 「류근일 필화」, 「기독교가 일으킨 필화들」, 「’여적‘사건과 한국 사법계의 풍향계」, 「’하와이 근성시비‘의 조영암의 수난」 등이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격랑의 한국 현대사를 비추는 빛
필화란 황혼이 되어서야 나래를 펼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아니라, 가장 먼저 회를 치며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려주는 갈리아의 수탉처럼 잠든 개벽을 깨우고자 울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인류 역사가 만약 필화의 충고를 그대로 따랐다면 아마 오늘 이 시대에는 평화와 풍요가 만연했을 것이다. 권력의 심판대에 섰던 피고인, 필화 수난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복권되어 선각자로 평가받을수록 그 사회는 선진화되고, 그게 늦어질수록 그 나라는 낙후할 수밖에 없다.
한국 현대사야말로 20세기 후반 세계 지성사에서 가장 필화가 많았던 격랑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희생자들을 복권시키기는커녕 도리어 점점 더 악마화 시키는 시대 역행 현상도 일어나고 있는 게 오늘의 한국이다. 이런 관점에서 말한다면 한국 현대사의 당면 과제란 이 필화사를 원상복귀 시키는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모든 필화는 국가폭력이다
저자는 이 책의 「책 머리에」와 「서문」에서 “모든 필화는 국가폭력이다”라고 주장하며, 그 논증을 위하여 고대 그리스의 국가통치를 위한 필화부터 나치의 ‘도서대학살(Libricide)’까지 소개하면서 그 어떤 명분이나 변명으로도 ‘국가폭력’으로서의 야만적인 일체의 필화를 비판했다. 이런 관점으로 8·15 이후 한국 현대 필화사를 보노라면 ‘국가폭력’이 단순한 분단 한국의 한 통치자에 의해서만 자행된 것이 아니라, 20세기 후반기 선진 제국주의의 직간접적 역학작용의 결과였다. 그런 관점을 일깨워 준 것은 루쉰의 명언인 “먹으로 쓴 거짓말이 피로 쓴 사실을 감출 수 없다.”라는 교훈이었다.
글 한 편 한 편이 독립적인 사건을 다루면서도 일관된 역사적인 연결고리로 연계되어 있기에 연작소설을 읽는 흥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필화의 피해자가 겪었던 고난과는 대조적으로 그 탄압세력들이 얼마나 비이성적이며 반역사적이고 비민주적이었던가도 대비시켰다.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8·15 이후 집권 세력의 순서대로 목차를 정했다. 워낙 필화가 많아서 전3권으로 나눴다. 제1권은 미 군정과 이승만, 제2권은 장면과 박정희, 제3권은 그 이후(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로 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격랑을 하나하나 다루면서 얼마나 많은 훌륭한 인물들이 참담하게 희생당하거나 고난의 생을 보냈던가를 상기하면 어떤 통곡으로도 그 원혼을 달랠 길이 없을 것이다. 이 모든 희생자들 앞에 작은 기념비를 세우는 심정으로 이 책을 바친다.”
지은이
임헌영 任軒永, Yim Hun-young
1941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중앙대 국문학과 및 대학원을 마쳤다. 『현대문학』을 통해 『장용학론』(1966)으로 문학평론가가 된 후 『경향신문』 기자, 월간 『다리』, 월간 『독서』 등 잡지사 주간을 지냈다. 유신통치 때 두 차례에 걸쳐 투옥, 석방 후 중앙대 국문과 겸임교수(2010)를 지냈고, 역사문제연구소 창립에 참여, 부소장·참여사회 아카데미 원장 등을 거쳐 지금은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창조와 변혁』, 『민족의 상황과 문학 사상』, 『문학과 이데올로기』, 『분단시대의 문학』, 『불확실 시대의 문학』, 『임헌영의 유럽문학기행』,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문학가 임헌영과의 대화』(대담 유성호) 등과, 리영희의 『대화-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대담을 맡았다.
차례
책머리에_ 먹으로 쓴 거짓말이 피로 쓴 사실을 감출 수는 없다
서문_ 모든 필화는 국가폭력이다
제1부 미군정 3년의 필화
미군정 3년 개관
조선정판사 위폐사건과 『해방일보』 등 좌익지 탄압
만담가 신불출의 설화
첫 필화시를 남긴 사형수 유진오
임화의 비극
친일파 청산의 첫 좌절
제2부 이승만 집권 초기
이승만 집권 초기
이승만의 정치 이데올로기와 문화정책
단정수립 직후의 주요 판금 시집
여순항쟁과 가수 남인수의 <여수 야화>
중도파 지식인 오기영의 좌절
조직 활동 문학인들의 검거
김태준과 박치우 두 지식인의 비극
검열제도의 강화와 국민보도연맹
전쟁과 이승만 정권, 그리고 자유언론투쟁
고관 부인, 작가 김광주를 린치하다
혀와 붓을 대포로 만든 김창숙 옹
제3부 이승만 집권 후기
가수 계수남과 시인 노천명
간첩으로 몰린 시인 한하운
『자유부인』과 간통 쌍벌죄
연옥의 한 가운데 떨어진 지식인 군상
‘학도를 도구로 이용말라’
조봉암, 냉전체제와 진보정치의 역학구도
강산도 눈물겨운 독재체제
류근일 필화
기독교가 일으킨 필화들
광야에서 생각하는 백성 외친 선지자 함석헌
‘여적’ 사건과 한국 사법부의 풍향계
‘하와이 근성 시비’와 지역감정 문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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