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시민역사관

구리나 철을 남기는 것은 부끄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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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톺아보기 26]

구리나 철을 남기는 것은 부끄러움을 남긴다?
– 전시체제기 금속류 공출

애국부인회의 금속류 공출 장면, 사진주보 <싸우는 조선(戰ふ朝鮮)>, 1945

금속류 공출식 사진, 국민총력 개정면 연맹, 15.2×10.6‘
구리나 철을 남기는 것은 부끄러움을 남긴다’, ‘결전 아래 금속류 공출을 앞장서서 실행하자’는 표어가 창에 붙어 있다.
‘보전 김교장의 수범’, 매일신보 1943년 4월 2일자
김성수가 전시물자 부족현상을 메우기 위한 ‘금속회수운동’에 적극 동참하기 위해 자택 철문 등 약 2백관(750kg)을 떼어 해군무관부에 헌납했다는 기사
놋그릇 공출, <사진으로 보는 한국백년> 2, 동아일보사, 1978

 

 

공출유기 대용 그릇, 지름 14.6×높이 8.3 
일본은 온갖 놋그릇을 빼앗아가고 일부는 대용품으로 사기그릇을 주었다. 공출로 나라에 보답하자라는 뜻의 ‘공출보국(供出報國)’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故 송병준 백(伯)의 동상 헌납’, 매일신보 1943년 8월 8일자
‘한일병합’의 훈공이 컸던 백작 송병준의 동상 2개를 송병준의 손자 노다(野田太郞)가 ‘금속회수운동’에 적극 동참하기 위해 유기금속과 함께 헌납하였는데 수많은 일반인이 이를 보고 유기그릇을 헌납하였다는 기사

일본의 침략전쟁이 확대될수록 식민지조선은 더욱 황폐해갔다. 강제병합 후 식민지조선의 ‘땅’과 함께 ‘쌀’의 수탈은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는데 중일전쟁 이후에는 한반도 곳곳의 지하자원과 해양자원 그리고 삼림까지 통제해 전쟁자원으로 동원했다. 흔히 ‘공출’이라고 하면 전쟁에 사용할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곡물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전쟁은 막대한 물자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행위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자 쌀 이외의 전시수탈이 더욱 강화되었다. 무기생산을 위해 전쟁 직전인 1941년 9월 <금속류회수령>을 공포하여 조선에 남아 있는 온갖 쇠붙이를 약탈해 갔다. 식기, 제기와 같은 그릇은 물론이고 농기구를 비롯해 교회의 종이나 절의 불상까지 빼앗아 무기로 만들었다.

특히 구리는 해군함정 중 잠수함 건조에 필요한 재료로 막대한 수량이 필요했다. 당시 조선에서는 놋그릇을 식기로 사용하고 청동화로를 난방기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것을 그냥 두고 보고있을 침략자들이 아니다. 일본 당국은 조선인들의 각 가정에 엄청나게 사용되는 놋그릇과 청동화로 같은 구리제품 공출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최말단 조직인 애국반 등에 의해 금속류의 공출이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미국에서 수입하던 설철(屑鐵:쇠 부스러기)마저 단절되자 무기생산에 큰 타격을 입은 일제는 전국에서 쇠붙이란 쇠붙이는 죄다 긁어모았다. 구리로 제작한 동상(銅像)이나 쇠 난간, 철제 가로등을 비롯해 가마솥까지 공출됐다.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밥그릇은 물론 숟가락 젓가락마저 빼앗겨야 했던 식민지조선의 민중은 이제 일제가 나누어주는 소량의 배급품으로 실낱같은 목숨을 이어가야만 했다.

강동민 자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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