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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포로가 된 식민지 조선인의 恨 – 시베리아 한恨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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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톺아보기 11 ]

전쟁포로가 된 식민지 조선인의 恨 – 시베리아 한恨의 노래

 

일본과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시베리아 억류기간중 미불임금 반환과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벌인 故 이규철

 

시베리아 한의 노래 육필 원고

 

일제강점기 징병·징용으로 끌려갔다가 만주·사할린·쿠릴열도 등지에서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 일대를 중심으로 집단 수용소 생활을 하며 수년간 가혹한 강제노동에 복역한 조선인들이 있다. 이들을 시베리아 억류자라고 한다. 조선인 시베리아 억류자는 무려 1만여 명에 달했지만 현재 한국 내 생존자는 10여 명뿐이다. 1991년 한국 거주 생존자들이 ‘시베리아삭풍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피해보상운동을 전개했다. 2010년 일본국회는 ‘전후 강제억류자 특별조치법안’을 제정 했으나 한국인 피해자들에게는 국적조항을 들어 보상에서 제외하였다. 끌고 갈 때는 일본인, 보상할 때는 한국인의 논리를 적용한 것이다.

1941년 12월 8일, 미국 태평양 함대의 기지인 진주만에 폭탄이 쏟아졌다. 일본군이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을 단행한 것이다. 태평양전쟁 발발로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만주를 침략한 이후 일본은 엄청난 양의 병력과 물자를 투입하였지만 전쟁은 쉽게 마무리되지 않았다. 특히 10여 년간 지속된 전쟁으로 일본의 젊은이들이 수없이 죽어가자 일본의 눈은 조선의 젊은이들로 향했다.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던 것이다. 태평양전쟁은 조선에도 ‘징병제’를 실시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번에 소개할 자료는 태평양전쟁 중 강제 징집되어 일본 관동군에 편입, 전쟁에 참가한 고 이규철의 육필 회고이다.
<시베리아 恨의 노래>로 원고제목을 붙인 이규철은 징집과정부터 부대배치, 자폭특공대 훈련, 시베리아 포로생활, 귀국과정 등을 총 237쪽에 걸쳐 수기로 작성하였다

<시베리아 恨의 노래> 표지

 

이규철은 1925년 1월 21일 경남 울산군 하상면에서 태어났다. 1941년 울산공립학교를 졸업한 그는 만주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중 1945년 8월 징집되어 일본 관동군에 편입되었다. 주요임무는 폭발물을 안고 소련 전차로 육탄 돌격하는 자폭특수대 역할이었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인 1945년 8월 8일 소련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참전했다. 이때 중국 동북부 만주를 점령하고 있던 일본 관동군은 대다수가 무차별 징집된 퇴역군인이나 초년병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강제 징집된 만주와 조선 청년들도 상당수 있었는데 이들은 소련군 탱크로 폭탄을 들고 돌격하는 훈련을 받았다. 바로 이들 중 한 명이 이규철이었다.
일본군은 소련군의 남하에 속수무책으로 후퇴를 거듭하다 결국 60여 만 명이 소련군의 포로가 되었으며 이 중 1만여 명이 조선의 젊은 청년들이었다. 이규철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전과 함께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블라코베시첸스크에서 포로수송 화물차로 세레칸 포로 수용소로 이송되었고 1948년 말까지 시베리아의 혹한 속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1949년 2월 천신만고 끝에 귀국했으나 조국은 분단되었고, 부친은 이미 고인이 되어 고향에는 모친과 형 둘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일찍 건빵으로 배를 채우고 전차격파 자폭대 훈련이 시작되었다. 길이 2m가량의 장대 끝에 원반 크기의 폭탄을 장치하고 그것을 들고 숲속에서 숨어 있다가 적의 전차에 뛰어들어 슬라이딩하는 식으로 전차 캐터필러 밑에 이것을 밀어넣어 전차를 폭파하는 일본 사무라이 전술이었다. 그 다음은 작은 귤만한 급조 폭뢰爆雷를 안고 전차를 파괴하는 훈련이다. 즉 급조폭뢰의 안전핀과 군복 가슴 단추를 짧은 끈으로 연결시켜 이것을 양손으로 껴안고 1인용 참호 속에 숨어 있다가 접근하는 적의 전차에 뛰어들어 전차 캐터필러 밑으로 이것을 밀어넣는 것이다. 그 순간 안전핀이 빠지는 동시에 급조폭뢰가 폭발한다. 자기 한 몸을 희생하고 전차를 파괴하는 자폭특공대 임무를 한국인 초년병에게만 강요하였는데 불평불만이 통할 리가 없다.
8월 염천하의 고된 훈련으로 속옷은 땀으로 젖어 내의는 피부에 찰싹 붙어 걷기도 힘들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내 몸을, 내 목숨을 바치고 이런 싸움을 해야 하는가. 적함 굴뚝에 돌진한 신풍(가미카제) 특공대와 같은 무모한 짓은 하고 싶지 않다.”
– 시베리아 억류당시 참상을 생생하게 기록한 ‘시베리아 한의 노래’ 육필 원고 중에서

• 강동민 자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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