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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74년전 세상 떠난 ‘임정 파수꾼’… 그 아들의 따끔한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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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리석 선생 74주기 추모식 현장… “참배할 때마다 ‘죄송하다’ 빌어야 했다”

9일 오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파수꾼’ 독립운동가 동암 차리석(1881~1945) 선생의 74주기 추모식이 서울 효창공원 내 임시정부 요인 묘역에서 열렸다.

▲ 차리석 선생(사진 오른쪽)과 홍매영 지사(왼쪽)의 결혼 사진. ⓒ 국가보훈처

‘임시정부의 파수꾼’ 동암 차리석

임시정부 국무위원과 비서장을 역임한 차리석 선생은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가 수립된 이래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임시정부 27년의 여정을 함께했다. 1932년 4월, 윤봉길 의거로 임시정부 요인들이 뿔뿔이 흩어져 피난 다니는 와중에도 정부가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했던, 그야말로 임시정부의 파수꾼이었다.

1948년 사회장 당시 “탁월한 사무 처리 기능이나 병중에서도 최후의 일각까지 맡으신 사명을 완수하신 강한 책임감은 한국독립운동에 피가 되고 살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백범 김구 선생과 성재 이시영 선생의 추모사는 선생의 위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생은 해방을 맞아 환국을 준비하던 중이던 1945년 9월 9일, 과로로 병사하고 말았다. 환국한 백범은 가장 먼저 임시정부 요인들의 유해를 봉환하는 사업에 착수했고, 1948년 선생 역시 지금의 자리에 안장됐다.

▲ 차리석 선생의 묘 ⓒ 김경준

“사죄와 반성 않는 반민족세력, 여전히 국민 우롱”

일반적인 독립운동가들의 추모식과 달리 선생의 추모식은 담당 주무부처인 국가보훈처의 후원 없이 매년 간소하게 치러지고 있다. “주무시고 계신 선친을 깨우고 싶지 않다”라는 장남 차영조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장의 뜻 때문이다.

올해 74주기 추모식 역시 직계 후손인 차영조 회장과 ‘임시정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의 증손자 이항증 선생, ‘국민부 참사’ 김진성 선생의 장남 김세걸 선생 등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중심으로 민성진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사무총장,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 등 독립운동 관련 단체 관계자들 몇몇만이 참석한 채 고인의 삶을 회고하는 모임의 형식으로 진행됐다.

▲ 차리석 선생 묘에 참배하는 추모객들 ⓒ 김경준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은 최근 책 <반일종족주의> 등으로 불거진 토착왜구 논란을 의식한 듯, “아직도 반민족 세력들이 사죄와 반성은커녕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라며 “선열들이 지금 눈을 부릅뜨고 지하에서 뭐라고 하시는지 귀기울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추모사를 빌어 친일 청산이 되지 않은 현실을 꼬집은 것. 그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반민족 세력을 청산하고 미래를 위해서 옳은 나라를 세우는 데 행동하는 후손이 될 수 있도록 선열들께 맹세하자”라고 당부했다.

홍소연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자료실장은 “요즘 같은 혼란과 위기에 국민들이 흔들리는 것은 우리가 큰 힘 앞에서 굴복하지 않았던 ‘독립정신’의 역사를 제대로 교육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라며 “우리는 늘 이기지 못할 큰 힘에 맞서 싸웠던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고, 그것을 젊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서 앞으로도 정의가 흔들릴 때, 앞장서서 그것을 이겨낼 수 있어야겠다”라고 젊은이들에 대한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장남 차영조 “부친이 차라리 중국에서 돌아가신 게 다행”

유족대표로 답사를 한 차영조 회장은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차 회장은 “부친이 차라리 중국 충칭에서 돌아가신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라며 “해방 후에 임시정부 요인들이 정식 정부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한 채 수형자들이 재판받으러 가듯이 입국했는데 그 꼴을 보지 못한 게 첫째로 다행한 일이고, 백범 김구 선생이 그렇게 동족의 총에 피 흘려 돌아가신 꼴을 보지 못한 것이 두 번째로 다행한 일이며, 6.25 전쟁 당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납북됐는데 그 수모를 겪지 않았기에 다행스럽다”라며 뒤틀린 우리 역사의 단면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 유족대표로 답사를 하고 있는 차영조 회장 ⓒ 김경준

그는 부친의 묘역을 참배할 때마다 ‘죄송하다’고 사죄해야만 했던 사연도 소개했다.

“그동안 보수 정권이 우리 독립운동사를 지우려고 했던 건 여러분도 잘 아실 거다. 세대가 가면 갈수록 선열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분위기가 조성될 줄 알았는데 해마다 더 짓밟혔다. 그래서 선친의 묘역을 참배할 때마다 늘 죄송하다고 빌어야만 했다.”

하지만 임시정부 계승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로는 “임시정부 선열의 정신을 계승한 정부가 들어선 것만으로 위로를 받으시라고 말씀드린다”라며 정부에서 근린공원인 효창공원을 ‘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성역화하기로 하는 등 문재인 정부의 독립운동가 선양에 대한 의지와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작년과는 다른 분위기… 청년들의 참석 눈에 띄어

올해는 3.1혁명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다. 그러한 흐름을 타고 사회적으로 독립운동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올해 추모식 분위기 역시 차영조 회장 홀로 묘역을 지키던 작년 추모식과는 확연하게 다른 것이 느껴졌다(지난해 추모식 기사 : 추모사 한줄 없는 어느 독립운동가의 추모식, http://omn.kr/13qb9)

그를 증명하듯 젊은 추모객들의 참석이 늘어난 것이 눈에 띄었다. 최근 약산 김원봉에 관한 책 <약산로드 7000km>를 출간한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는 차영조 회장에게 직접 쓴 책을 헌정했으며, 독립운동가들을 그라피티로 기록하는 LAC 그라피티 스튜디오의 레오다브 작가(본명 최성욱)는 기일에 맞춰 직접 그린 차리석 선생의 그라피티 초상화를 묘역에 헌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 차리석 선생의 그라피티 초상화를 헌정한 레오다브 최성욱 작가 ⓒ 김경준
▲ 차리석 선생 묘역 앞에서 열린 “차리석 그라피티 작품 헌정식”에서 차영조 회장과 레오다브 최성욱 작가가 함께 작품을 들고 있다. ⓒ 김경준

머리가 희끗희끗한 참석자들은 청년들의 자발적인 참석과 색다른 아이디어에 많은 관심을 갖고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날 추모식 현장에서 만난 차영조 회장이 참석자들에게 남긴 말은 여전히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었음을 느끼게 해줬다.

“독립운동하면 삼대가 망한다고 하는데 본인, 아들, 손자까지 망했으면 증손자부터는 달라져야 하는데 가면 갈수록 더 힘들다. 가진 거 없고 교육도 못 시켰으니 계속 하류 생활을 하게 돼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삼대만 망하는 게 아니라 삼대가 지나도 못 산다. 삼대를 지나 몇 대까지 망할지 모른다는 게 역사적으로 증명이 되고 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역사의 기억은 흐릿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흐릿해진 기억의 끈을 붙잡고, 다시는 그러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청산해야만 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만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한다’는 말도 ‘반일종족주의는 한국의 정신문화를 낮은 수준에서 헤매게 하는 주범’이라는 말도 틀렸음을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2019-09-09>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74년전 세상 떠난 ‘임정 파수꾼’… 그 아들의 따끔한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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